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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명절을 맞아 같은 기간에 개봉한 영화 한 편을 봤다. 바로 <남산의 부장들>. 동생이 내일 우리 가족 다 같이 영화관 갈까? 하는 제안에 곧장 예매를 했다. 보통 명절에 부랴부랴 영화티켓을 예매하면 괜찮은 위치에 자리 네 개가 연달아 있는 경우가 드문데, 다행히 조금 뒤쪽이기는 해도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를 구했다. 명절이 확실히 영화관 대목이기는 한지, 영화관에 가까운 층으로 갈수록 주차하기가 팍팍했다.
역사적 맥락 안에서 스토리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 주인공을 스토리의 소재로 삼으면 어쩐지 부담스럽다. 예를 들어, 70~80년대 군부독재를 살아간 서울시민들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라고 하면 괜히 더 궁금하지만, 독재정권의 정점에 있던 대통령과 막후의 핵심인물이었던 중앙정보본부장, 경호실장이 전면에 나온다면 거꾸로 뭐든 안경을 하나 집어들고 봐야할 거 같다. 후자의 경우, 감독이 의도하는 바나 연출하는 방식에 따라 인물이 미화되거나 왜곡되거나 훼손되는 폭이 크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건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는 법. 실존 역사인물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는 어쨌든 감독의 해석을 한 번 거쳐 관객들에게 소개되기 때문에, 감독의 시선이 관객의 시선과 일치하리란 보장이 없다. 물론 <뷰티풀 마인드>처럼 실존 인물의 이야기가 관객의 공감대를 끌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존 내쉬는 어디까지나 비정치적인 인물이고, 이야기가 정치가로 넘어오면 관객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대통령에 대한 해석은 너무 분분하기에 새삼 부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어쨌든 이 영화는 민주주의를 탄압한 독재자로서 대통령이 악인으로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몇몇 각색된 장면이 있다는 것도 감안해서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조직의 철두철미한 관료체제 안에서 대단히 순응적인 권력자들을 그리고 있다. 나름의 확고한 주도권을 갖고 있어야 할 사람들―중앙정보본부장과 경호실장―이 단 한 사람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주도권을 내어주는 장면을 보며, 조직의 생리에 대해 뼈저린 권태감마저 느끼게 된다.
의외로 영상이 되게 좋았다. 실제 70년대를 옮겨놓은 듯한 명동거리는 지금도 청계천의 을지로 일대를 가보면 느낄 수 있는 분위기다. 배경뿐 아니라 소품이나 등장인물들도 최대한 당시의 느낌이 들도록 연출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영화가 그려낼 수 있는 스토리라인이 자칫 진부할 것 같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명절을 유익하게(?) 보낸 느낌이 들 만큼 생각해 볼 만한 영화였다. 누구나 막강한 권력을 손아귀에 쥔 실세였지만, 각각의 캐릭터는 동상이몽을 꾼다. 이런 차이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개인의 성향일까 체제의 제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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