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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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5일상/book 2022. 2. 28. 06:31
객줏집을 나선 길상은 아무도 없는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든다. 역시 강아지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길, 사람도 시가도 모두 피곤한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불타버린 폐허 옆을 지나간다. 군데군데 쳐놓은 이재민의 막들이 보채다 잠이 든 아기같이 적막 속에 엎드려 있다. 구릉진 곳을 휘청휘청 올라간다. 자작나무 몇 그루를 지나서 바위 옆에까지 간 길상은 바위에 등을 기대고 가물거리는 별들을 오랫동안 올려다본다. 도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을 별들은 저렇게 가물거리고 있었더란 말인가. 시가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방금 지나온 그 자리가 희미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무너지고 재가 되고 폐허로 변한 곳, 저 잿더미는 죽음일까? 저 사물의 변화는 과연 죽음일까? 끝이 없는 세월과 가이 없는 하늘은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