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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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소돔과 고모라 II일상/book 2021. 7. 22. 17:19
마르셀 프루스트의 글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만연체가 많다. 이 부분은 다시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데, 우선 프랑스어의 운율을 모른 채 번역본을 읽을 때는 만연체가 함축한 리듬을 파악하기 어렵다. 각주에 프랑스어로 어떤 언어유희가 활용되고 있는지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아무래도 유머를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데다 만연체로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밀도있게 이뤄지지만, 거꾸로 얘기하면 한 권을 다 읽어도 며칠에 걸친 스토리이거나 기껏해야 한 계절에 걸친 스토리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달리 말하면 프루스트는 '시간'을 귀중한 물건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내듯 아주 치밀하게 써내려간다. 한참 몰입해서 읽고 있는데 문득 아직 한 장면이 끝나지도 않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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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기일상/book 2021. 1. 1. 18:19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 권리가 있다고 믿어요. 그 정도가 아니라, 종교와 거의 대부분 국가의 법체계, 심지어 그 나라의 헌법도 동일하게 말하죠. 그러나 그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어요. 우리가 만들지도 않았고 얻은 것도 아닌 것에 무슨 권리가 있다는 말이지?라고 그는 말하곤 했어요. 그 누구도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다고, 혹은 예전에 이 세상에 있어본 적이 없다거나, 영원히 그 안에 있어본 적이 없다면서 불평을 늘어놓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왜 죽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혹은 나중에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또는 영원히 그 안에 머무를 수 없다고 불평하나요? 그는 이런 두 가지 관점이 똑같이 황당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누구도 자기가 태어난 날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요. 그러나 자기가 죽는 날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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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걸작일상/book 2019. 10. 3. 00:03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으레 변명이 그러하듯 일상을 보내다보면 관심가던 것들이 바뀌고 흥미를 끌던 것들도 흐트러진다. 그런 까닭에 오노레 드 발자크의 글은 나의 변덕스러움 속에서 외면받아 왔었던 것이다. 이 얇은 책에는 짧지만 강렬한 두 편의 글―과 ―이 실려 있다. 퇴근길을 할애해가며 책을 후루룩 읽었다. 이 두 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돈 후안과 프렌호퍼―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의심'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삶을 관조(觀照)하고 부유(浮遊)하는 돈 후안이나, 실재(實在)에 다가가기 위해 선 하나 면 하나에 번민을 거듭하는 프렌호퍼, 둘 모두 끝없는 회의(懷疑) 끝에 일종의 자기 부정(否定)에 이르는 인물들이다. '질레트'(즉 재현의 대상)와 '카트린 레스코'(즉 표현의 대상)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