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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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랑일상/book 2022. 1. 9. 01:07
이제는 부끄럽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 모든 사물의 뒤, 詩集과 커피 잔 뒤에도 막막히 누워 있는 그것만 바라봅니다. 정처 없던 것이 자리 잡고 머릿골 속에서 쓸쓸함이 중력을 갖고 쓸쓸함이 눈을 갖게 되고 그래서 볼 수 있습니다 꽃의 웃음이 한없이 무너지는 것을 밤의 달빛이 무섭게 식은땀 흘리는 것을 굴뚝과 벽, 사람의 그림자 속에도 몰래몰래 내리는 누우런 황폐의 비 그것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발바닥까지 어떻게 내 목구멍까지 적시는지를 눈 꼭 감아 뒤로 눈이 트일 때까지, 죽음을 향해 시야가 파고들 때까지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내 속에서 커가는 이 치명적인 꿈을. 그러면서 나의 늑골도 하염없이 깊어지구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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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일상/book 2021. 12. 22. 09:58
최승자 시인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게 아마 영양(英陽)에서 (명칭이 조금 거창하기는 하지만) 북스테이를 할 때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끄럽게도 한국문학에 관한 내 지식은 고등학교 때 배운 범위를 크게 넘지 않는데, 북스테이 당시 그녀의 짧은 시를 읽고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정확한 문구나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꽤나 파격적이었던 인상이 남아 있다. 그녀 자신은 '가위눌림'과도 같은 세사(世事)에 저항하며 시작(詩作)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강인한 인상으로 남아 있던 시(詩)와 달리 산문집은 담백하고 또 담백하다. 일상적인 서사를 담고 있지만 죽음, 자연, 고독에 대한 직관적 인식이 담겨 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부담스럽다기보다 맞아 그렇지.., 하면서 글을 읽게 된다. 멋지다, 진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