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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나간 자리일상/film 2017. 3. 9. 00:52
<파도가 지나간 자리/드라마/헨릭 시엔프랜스/톰(마이클 패스밴더),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 해나(레이첼 와이즈)/132>
간혹 이럴 때가 참 기분이 묘하다. 읽은 지 얼마 안 된 소설의 내용과 방금 본 영화의 내용이 겹치는 경우. 소설과 영화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서로 다른 그릇이다. 그런 데다가 심지어 등장인물과 이름, 배경도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틀은 완벽히 똑같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며칠 전 읽었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와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가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라는 뜻이다.
가장 최근에 읽었던 소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에서는 '마르타'라는 여성의 죽음을 매개로 '데안'과 '빅토르'라는 두 남성이 조우(遭遇)한다. 반면 오늘(시간상으로는 어제) 본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앤서니'라는 독일인의 죽음과 '루시'라는 아이의 등장이 '톰 부부'와 '해나'를 연결시키는 고리 역할을 한다. 두 작품 모두,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세계를 매개해주는 교집합을 등장시켜 인간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등대 뿐인 무인도의 이름이 '야누스'인 것만 해도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다가온다. 야누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신이다. 때문에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여러 사건들의 이면에 숨어 있는 사연, 아픔, 내적 갈등을 다루는 영화이다.
한편 야누스는 죽음의 신이기도 하다. '톰'이 야누스 섬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섬에서 등대지기로 근무한 전임자는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만큼, 이 외딴 섬은 고립된 데다 매우 척박한 곳이다. 즉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공간이다. 그런 야누스 섬에서 '톰'은 '이자벨'에게 (감히) '삶을 찾고자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물론 1차 세계 대전에서 온갖 살육을 목격한 '톰'으로서는 야누스 섬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안식처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죽음에 가까운 환경 속에서 주인공들은 과연 삶의 광명을 찾았을까. 원제가 <The Light Between Oceans>인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제작자는 인간의 삶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더욱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야누스 섬에서는 '톰'과 '이자벨'이 그리고 해안가 마을에서는 '해나'가 본인의 삶을 위해 올바른 결정을 찾아나간다. 순전히 선의에서 '루시'를 거뒀던 '이자벨'. 생물학적 부모이지만 이미 '이자벨'에게 길들여진 '그레이스'―'루시'의 본명―를 보며 혼란스러워 하는 '해나'. 내가 보기에 세 사람 모두 각자가 납득할 만한 타협점을 만들어낸 것 같다.
용서는 한 번으로 끝나지만, 증오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대사였다. 아마도 문제는 그 한 번의 용서가 쉽지 않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대사는 무인도로 떠밀려온 보트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앤서니'가 생전에 아내 '해나'에게 건넨 말이다. 영화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대사였다. 이런 대사가 울림이 있었다는 걸 보면 내 안에도 무언가 씻어내지 못한 앙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이 잔잔하게 담겨 있다는 점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차분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밋밋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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