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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서부영화 한 편!!일상/film 2017. 5. 14. 00:55
<데드 맨/서부영화/짐 자무쉬/윌리엄 블레이크(조니 뎁), 노바디(개리 파머)/121>
서부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다. 사실 이 영화가 서부극인 줄도 모르고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가 시작하면서 서부극이라는 것을 알았고, 상영이 끝난 뒤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서야 전통적 의미의 서부극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매우 정치적인 함축을 담고 있다는 큐레이터의 설명도 흥미로웠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담은 영화라고 느꼈다.
It is preferable not to travel with a dead man. (―Henri Michaux)
윌리엄 블레이크(조니 뎁)에게 돌진해 온 일꾼의 얼굴은 석탄에 그을려 사악한 인상을 풍긴다.
이때 버팔로 떼를 발견한 사냥꾼들은 일제히 일어나 사격을 연발한다.
서부 개척이 한창 이루어지던 시기 인디언들의 인구를 감소시키고자 그들의 식량인 버팔로를 사냥한 만큼 현상해주었다고 한다.
1. Frontiers!!
골든 러시를 배경으로 하는 서부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다. 마초적인 사나이들의 등장, 치열한 심리전, 황량한 풍경, 야비함. 서부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기차 안에서 출발한다. 「자리에 앉아 있는 조니뎁 → 기차 안 풍경 → 기차 밖 풍경」 순으로 여러 차례 장면이 바뀌고 풍경이 변한다. 처음에는 평범한 소시민들로 가득차 있던 열차 안은 어느 순간 농부로, 마지막으로 사나운 인상의 사냥꾼들로 바뀌어 간다. 기차 밖도 마찬가지. 수풀이 드물어지는 가 싶더니 이내 모뉴먼트 밸리가 나타난다. 가끔 방치되어 녹슨 마차, 불태워진 인디언들의 천막이 등장한다. 열차가 종착지에 이를 즈음, 증기열차에 석탄을 퍼나르던 일꾼이 대뜸 조니 뎁(윌리엄 블레이크) 앞에 앉는다. 그리고 말한다.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종착지의 이름은 "머신 타운".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산업사회를 비판했던 것처럼, 짐 자무쉬가 지금부터 그리고자 하는 서부영화가 단순히 남자들의 총싸움이 아니라 인간문명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니나 다를까, 온통 잿빛으로 가득찬 이 도시에 사람들은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윌리엄 블레이크 作 「연인들의 회오리」
2. William Blake & Nobody
조니 뎁이 연기한 윌리엄 블레이크는 실존인물로 17~18세기에 활동한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이다. 조니 뎁을 황야에서 구해준 인디언 "노바디(Nobody)"가 그에게서 화가와 시인이 보인다고 한 것 역시 윌리엄 블레이크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신비주의적인 판화와 시를 만든 인물로, 당시 그가 영국사회에서 목격하던 물질문명에 대해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짐 자무쉬가 담고자 한 메타포―서구문명의 어두운 단면―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임을 알 수 있다.
"노바디" 역시 마찬가지. '빌어먹을 백인놈들'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는 한때 미국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서구식 교육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인디언 사회로 되돌아갔을 때 인디언 사회에서 서구화된 그를 받아준 곳은 없었다. 그는 미국인들에게도 인디언들에게도 무의미한 '노바디'였을 뿐이었다. 서부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서구인들이 인디언들을 동원하고 이간질한 방식과 만행에 대해 간접적으로 고발하는 캐릭터라 볼 수 있다.
더불어 서구문명의 양면성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교역소에서의 장면이다. 맨 처음 조니 뎁(백인)이 건물에 들어섰을 때, 크리스천 복장의 주인은 온갖 미사여구로 그를 환대한다. 그러나 뒤이어 "노바디"가 나타나자, 경멸하는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종교인의 이율배반적 태도는 서구인들이 자부하던 개방적 가치, 또는 프론티어 정신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마침내 삼나무 그득한 카누에 실려 바다에 떠나보내지는 윌리엄 블레이크.
그의 가슴팍에는 피우지 않은 담배뭉치가 얹혀져 있었다.
3. Life or Death
뜻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른 후 청부업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윌리엄 블레이크. 그는 영화 내내 왼쪽 가슴에 총탄이 박힌 채로 돌아다니는데, 그가 살아 있는 건지 죽어 있는 건지 영화 내내 애매하게 표현된다. "노바디"가 그의 얼굴에서 해골을 발견하고 그의 안경을 벗기는 장면에서 간접적으로 그의 죽음이 표현되는데, 이 장면을 기점으로 살생에 주저하던 이전의 윌리엄 블레이크는 총을 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총잡이로 변신한다.
한편 "노바디"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인디언답게도) 참으로 동양적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전 생애에서 화가와 시인이 보인다는 말도 그렇고, 물을 통해 죽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뜬구름 잡는 표현도 그렇다. 언뜻 윤회설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새로운 일자리를 얻고자 클리블랜드에서 프론티어로 향했던 윌리엄 블레이크. 그러나 그가 발견한 것은 직업이 아닌 죽음이었다. 친구 윌리엄 블레이크의 평안한 죽음을 도왔던 노바디 역시 뒤따르던 청부업자의 총에 맞아 죽고 만다. 과연 영화의 첫머리에서 말한 대로 죽은 이와는 함께 여행하지 않는 편이 좋다.
.....結
(기대도 없이 갔지만) 생각보다 재미있게 봤다. 특히 지기지기징징~ 하는 일렉트리 기타 사운드가 영화 전반에 걸쳐 나오는데, 묵직하고 괄괄한 사운드 덕분에 영화를 보는 데 지루함이 없었다. (영화의 장면 전환이 매우 많은 편인데도 말이다) 닐 영이 영화를 보면서 즉흥적으로 작곡한 OST라고 한다. 여하간 좀 더 새롭고 독특한 서부영화를 찾는다면 짐 자무쉬의 <데드 맨>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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