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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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일상/book 2020. 11. 29. 00:51
짧고 읽기 어렵지 않고 동화 같은 책이다. 직전에 읽었던 이탈로 칼비노의 처럼 소설의 관찰자 시점으로 꼬마가 등장한다. 소설은 변증법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선과 악 각각은 홀로는 완전한 의미를 갖지 못하고 함께 있을 때라야 의미가 온전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악한 메다르도 자작[子爵]과 선한 메다르도 자작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꼭 선악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한 쌍을 이루는 모든 개념—음양, 좌우, 피아—에 의 세계관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도그마(Dogma)는 어떠한 차이나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데, 이탈로 칼비노는 이러한 교조주의적 태도가 우리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선과 악 둘 모두를 긍정하는 팔메다, 세바스티아나 유모가 이탈로 칼비노가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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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가벼운 여행(Resa med lätt bagage)일상/book 2020. 8. 3. 00:09
배가 드디어 잔교를 빠져나갈 때 나의 마음에 밀려오는 안도감을 묘사할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그때다. 아니 불러도 소용없을 만큼 배가 부두에서 멀리 떨어진 다음에…… 아무도 내 주소를 물어볼 수도, 무슨 끔직한 일이 벌어졌다고 소리를 칠 수도 없을 때……. 사실 여러분은 내가 느끼는 어지러울 정도의 해방감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외투의 단추를 풀고 담배 파이프를 꺼냈지만, 손이 떨려서 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어쨌건 나는 파이프를 잇새에 물었다. 파이프는 주변 환경과 나 사이에 나름의 거리를 만들어 준다. 나는 이물 앞으로 나아갔고, 도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둘도 없이 최고로 마음 편한 관광객처럼 난간에 기대어 섰다. 맑은 하늘의 작은 구름들은 장난스럽고 기분 좋게 무질서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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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Les choses)일상/book 2020. 3. 31. 02:51
사실 이 책을 이렇게 후딱 읽을 줄은 몰랐다. 카페 마감시간을 1시간 반 여 앞두고 140여 페이지 되는 이 책을 휘리릭 읽었다. 속독을 한 건 책을 얼른 읽은 다음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려던 생각에서였는데, 그것도 타이밍을 잃어서 다 읽은 책을 그냥 고스란히 들고 왔다;; 120% 내 상황을 잘 나타내준 소설이었고, 아마 사회초년생이라면 누구나 다 느낄 법한 내용이었다. 사실 묘사가 너무 정확해서, 좀 더 장편소설이거나 아니면 연작이기를 바랐을 정도다.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뿌리부터 부자유하다는 느낌. 소확행을 바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부자이지 못한 자신에게 습관적으로 분노를 느끼는 일상. 보헤미안처럼 방랑하는 듯하지만, 행여 현재의 일상이 기획한 구조로부터 유리(遊離)될까봐 노심초사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