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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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비사물일상/book 2024. 8. 5. 12:07
내가 그것을 홀대하고 그것이 내게 쓸데없더라도, 혹은 이런 것을 가치 있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도 터무니 없을 것이다. 공기나 물처럼, 내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할 때면 나는 무언가를 위반한다는 막연한 느낌이 든다. 뭉뚱그려서 말하면, 내가 위반하는 이유는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무단으로 넘나들기 때문이다. 가령 자연에 시시한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엄하므로 자연을 위반하는 것이다. 가령 문화 바깥에서 가치를 논하는 것은 반인간주의이고 따라서 무엄함 이상이므로 문화를 위반하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과연 자연과 문화의 경계는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이들 사이에는 도처에 무인지대가 있고 도처에서 은밀한 월경(越境)이 일어나지 않는가?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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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일상/book 2020. 3. 13. 00:08
정신사적으로 볼 때 근대 사회철학의 등장은 사회적 삶을 근본적으로 ‘자기보존’(Selbsterhaltung)을 위한 투쟁관계로 규정하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의 정치 저술에서 주체들이란 자신의 이해를 둘러싼 지속적 경쟁 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정치적 존재로 파악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견해는 토머스 홉스의 저작 속에서 국가의 주권을 계약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중대한 토대가 된다. 이러한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새로운 사고 모델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중세까지 효력을 발휘했던 고대 정치이론의 주요 구성 요소들이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정치론에서 중세의 기독교적 자연권이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근본적으로 일종의 공동체적 존재, 즉 정치적 동물(zoon 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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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윌 :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일상/book 2018. 10. 16. 21:55
자연은 모든 곳에서 자연 자신의 능력을 배분할 때 목적을 가지고 행합니다. 그런데 의지는 그 자체로 선하며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의지는 유일한 선함이 아니어도 선함의 전부가 아니어도 좋습니다만, 최고의 선함이자 나머지 모든 선함의 조건이며, 그리고 행복을 열망하는 조건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성의 참다운 사명은 선한 의지를 낳는 것입니다. 일차적이며 무조건적인 목적에 필수적인 이런 이성을 잘 수양하는 것이 행복 달성에 여러모로 방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인생에서는 그러하지요. 행복이란 항상 조건적이며 이차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성이 행복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자연의 지혜와 모순되지는 않습니다. 이성이 심지어 행복을 무가치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