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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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목항으로여행/2021 봄 원산도 2021. 5. 4. 09:05
좁다란 골목을 빠져나와 선촌 선착장에 다다랐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부두 위에 흉물스럽게 방치된 녹슨 닻이다. 로고나 심벌로 ‘닻’을 본 적은 자주 있지만 실물로 닻을 보니 잠시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는 듯하다. 구릿빛으로 얼룩덜룩 녹이 슨 닻이 뭉텅이로 쌓여 있는데, 그 크기가 기우뚱하게 있는 바로 옆 가로등과 비슷하다. 선촌항 맞은편으로는 가까이에 효자도가 보이고, 몇 편의 작은 어선이 아무런 규칙과 상관 없이 정박되어 있다. 영목항보다도 한결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없는 곳이다. 다시 원산안면대교로 향하기 위해서는 야트막한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한다. 시골집에는 어딜 가나 개를 키우는 모양이다. 골목을 가로지를 때마다 개짖는 소리가 저마다의 울음으로 들려오고, 때로는 짖는 개를 나무라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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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촌항으로여행/2021 봄 원산도 2021. 5. 3. 10:37
숙소 주인이 내게 추천을 해준 곳이 원산도였다. 그게 아니라면 원래는 천수만 방면의 해안가를 거닐어볼까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렇지 않아도 한밤중에 택시를 타고 숙소에 온 나를 괴이하게 여긴 주인과는 그 이튿날이 되어서야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왜 읍내가 아닌 고남면까지 내려왔는지, 왜 그 늦은 시간에 서울을 출발했는지 등등. 바다를 보러 왔지만 사실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내 말에 주인이 바다를 볼 거라면 원산도를 가볼 것을 권했다. 다만 차를 끌고 오지 않아서 도보로 둘러보기에 괜찮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갸웃한다. 원산안면대교를 도보로도 건널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일단 출발을 준비했다. 영목항은 그리 크지 않은 항구다. 남쪽으로 뻗은 꽤나 가파른 언덕길이 부두와 곧장 맞닿아 있다. 다만 원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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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만남여행/2021 봄 원산도 2021. 5. 1. 01:08
계획없이 내려와서 갈아입을 옷가지조차 챙겨오지 않았지만, 정말 생각없이 내려왔구나 하고 느꼈던 게 챙겨온 카메라를 꺼내들었을 때였다. (아차차) 카메라와 충전기를 따로 챙겨왔는데, 충전기의 로고를 보니 예전 카메라 것이었다. 충전기도 잘못 들고 왔을 뿐만 아니라 카메라도 안을 열어보니 배터리 자체가 없다. 유일하게 챙겨온 것이라곤 카메라 하나인데, 별 도리도 없어서 사진에 대한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버렸다.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투숙객은 나와는 정반대여서 준비성이 아주 철저했다. (아마 자동차를 끌고 왔기 때문에 나보다 훨씬 많은 짐을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휴대용 프렌치프레스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그라인딩된 원두를 붓는다. 잠깐 시간을 들여 내게 커피를 내어준다. 프렌치프레스로 추출해서 그런지 훨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