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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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일상/book 2020. 10. 31. 18:58
그 무엇이 나에게 일어났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늘 있는 어떤 확신이라든지 자명한 일처럼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마치 병에 걸리듯이 닥쳐왔다. 그것은 조금씩 음흉하게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나 자신이 좀 괴이하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뿐이다. 한번 자리를 잡더니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무렇지도 않고 헛놀란 것이라고 자신을 타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또 꽃잎을 열었다.—p. 15 무릇 물체들, 그것들이 사람을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을 정리하고, 그 틈에서 살고 있다. 그것들은 유용하다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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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마톨로지(Grammatologie)일상/book 2020. 8. 23. 00:25
이 제목 아래 어떤 생각을 품든 간에, 언어의 문제는 결코 여러 문제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만큼 그 문제가 있는 그대로 가장 다양한 연구들과 그 의도, 방법, 이데올로기에 있어서 가장 이질적인 담론들의 세계적 지평을 침입한 적은 없었다. ‘언어’라는 낱말의 평가 절하 그 자체, 그 낱말에 부여하는 신용에서 그 어휘의 졸렬함, 헐값에 농락하려는 유혹, 유행에 수동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것, 전위의식(conscience d’avant-garde), 즉 무지, 이 점들 모두가 그 점을 증언한다. ‘언어’라는 기호의 인플레이션은 기호 자체의 인플레이션이며 절대적 인플레이션이자 인플레이션 그 자체이기도 하다. ―p. 41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그 역설은 다음과 같다. 자연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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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타자일상/book 2020. 4. 8. 21:12
레비나스의 글은 처음이지만 이런 글들을 읽으며 삶에 서 큰 용기를 얻는다. 철학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허풍잡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이래서 철학책을 찾는가보다 싶다.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글덩어리를 음미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활자는 크고 행은 여유가 있어 좋다. 아주 단출한 책인데 내용은 단출하지가 않다. ‘사유하는 존재서로의 인간’이라는 데카르트의 명제 이후 오늘날 현대철학은 인간 주체의 죽음을 고하기에 이르렀다고 역자는 잠시 짚고 넘어간다. 단, 레비나스의 글을 읽으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느꼈다. 존재의 부재가 단지 물리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인간은 존재에 가해지는 부재(不在) ―존재의 현현과 익명성 자체가 되어버린 존재 ―의 그늘 아래 인식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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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학파 3세대의 철학 한 스푼일상/book 2020. 3. 14. 21:31
푸코와 들뢰즈, 과타리의 글에서 한 번 데이고 프랑스 현대철학이 아닌 사상적 조류를 찾아보고 싶었다. 꼭 철학이 아니더라도 소설이든 사회과학책이든 중세,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보다는 시점상으로 가까운 근현대에 지어진 것에 좀 더 관심이 간다. 그래서 찾아본 것이 독일 현대철학이다.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비록 본인은 이런 표현을 고사하기는 하지만) 3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이끌고 있는 좌장이고, 즉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로 대표되는 1세대와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2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읽기에 난해한 책일까봐 지레 겁을 먹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독자에게 친절한 책이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하다면 아주 잘 쓰인 논문 한편을 읽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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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일상/book 2020. 3. 13. 00:08
정신사적으로 볼 때 근대 사회철학의 등장은 사회적 삶을 근본적으로 ‘자기보존’(Selbsterhaltung)을 위한 투쟁관계로 규정하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의 정치 저술에서 주체들이란 자신의 이해를 둘러싼 지속적 경쟁 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정치적 존재로 파악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견해는 토머스 홉스의 저작 속에서 국가의 주권을 계약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중대한 토대가 된다. 이러한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새로운 사고 모델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중세까지 효력을 발휘했던 고대 정치이론의 주요 구성 요소들이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정치론에서 중세의 기독교적 자연권이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근본적으로 일종의 공동체적 존재, 즉 정치적 동물(zoon 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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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각 : 들뢰즈와 과타리의 글을 읽고일상/book 2020. 3. 7. 01:38
현대철학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은, 뭘 어떻게 잘못 먹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나마 위안이라고 한다면, 미셸 푸코의 은 1%쯤 이해했다면 들뢰즈와 과타리의 는 넉넉잡아 10%쯤 이해했다는 점. '기관 없는 몸'의 '절단'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똥을 끊으며'라는 묘사를 읽을 때, 글쎄 뭐라 해야 할지 철학책에서 기대할 법한 표현이 아니라서 내심 피식하기도 했지만 야릇하게 구미를 당기는 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별개로 글이 어려웠다 뿐이지 번역은 좋았다'~') 철학이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과 이해를 다루는 학문이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어렵게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대물리학을 떠올려보면 현대철학이 일반인들이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모양이 바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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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오이디푸스일상/book 2020. 3. 6. 23:23
suivi.. 이로써 『안티 오이디푸스』가 대면하는 세 부류의 적이 있게 된다. 이 적들은 똑같은 힘을 갖고 있지 않고, 다양한 정도의 위험을 대표하며, 이 책은 그들에 대해 상이한 방식으로 전투한다. 1. 정치적 금욕주의자들, 미친 투사들, 이론의 테러리스트들. 이들은 정치와 정치 담론의 순수한 질서를 보존하고자 한다. 이들은 혁명의 관료요 진리의 공무원이다. 2. 욕망의 서툰 기술자(技術者)들, 즉 정신분석가 및 모든 기호와 징후의 기호학자들. 이들은 욕망이라는 다양체를 구조와 결핍의 이항 법칙에 종속시키려 한다. 3. 끝으로 특히, 주요한 적수이자 전략적인 적은 파시즘이다. 대중들의 욕망을 동원하고 매우 효과적으로 이요할 줄 알았던 역사적 파시즘,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파시즘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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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물일상/book 2018. 4. 4. 23:54
우리는 그림을 바라보고, 그림 속의 화가는 우리를 응시한다. 더도 덜도 아닌 대면(對面), 갑자기 서로 마주친 눈길, 서로 교차되면서 겹치는 곧은 시선, 그렇지만 이 상호적 가시성의 가느다란 선에는 불확실성, 교환, 회피라는 시선을 포괄하는 복잡한 망 전체가 내포되어 있다. 화가의 시선은 우리가 소재(素材)의 자리에 있는 경우에만 우리에게로 향한다. 관람자로서 우리는 추가 요소일 뿐이다. 우리는 화가의 시선에 받아들여지지만 또한 화가의 시선에 의해 축출되고 우리보다 먼저 언제나 거기에 있던 것, 즉 모델로 교체된다. 그러나 역으로 화가의 시선은 그림의 바깥으로, 화가와 마주 대하는 허공을 겨냥하는 것으로서, 관람자들이 오는 그만큼 많은 모델을 받아들이는 셈이며, 그 명확하나 중립적인 장소에서 주시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