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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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밤(la nuit)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19. 13:17
비포장도로의 끝에 일군의 천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첨단시설들은 너무나 새하얗거나 너무나 차가운 메탈 색깔을 하고 있었다. 인공의 자재들은 여기까지 어떻게 싣고 왔을 것이며, 천체관측장비를 가동할 전기는 어디서 끌어온단 말인가. 일몰시각으로 향하는 태양은 마우나케아의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고, 빛을 받은 능선의 봉긋한 머리는 마치 화성의 크레이터처럼 빨갛게 익었다. 한 젊은 남성이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가 바로 마우이에요! 북쪽의 운해(雲海) 위로 완만하고 거대한 산봉우리가 보였다. 할레아칼레 화산이다. 작년 대화재를 겪었던 마우이 섬의 존재는 하와이에 놀러 여행을 오면서도 영 마음 개운치 않은 짐이었다. 구름과 마찬가지로 뭉게뭉게 피어오른 할레아칼레 화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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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별(les étoiles)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17. 00:51
두 번째 숙소에서 짐을 푼다. 빅 아일랜드의 마운틴뷰에 위치한 우리의 두 번째 숙소는 방갈로였다. 하와이에는 ‘retreat’이라고 해서 조용하게 칩거할 수 있는 공간이 드문드문 곳곳에 퍼져 있다. 첫 번째 숙소가 주택단지에 위치한 가정집이었다면, 두 번째 숙소 역시 주택단지에 있기는 하지만 집과 집 사이의 녹지가 넓고 우거져서 사생활이 완전히 보호되는 공간이었다. 나는 하와이에 오게 된다면 이렇게 완전히 주위과 격리된 공간에서 쉬어보고 싶었다. 화산 공원에서 점심을 먹고 나올 즈음 휘몰아치는 물보라가 점점 거세어지고 있었으니, 마우나케아로 오르는 길이 안전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출발하기 전 미리 방문자센터에 전화해서 마우나케아에 진입할 수 있는 상황인지 확인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유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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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금(Crack)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8. 16:55
모든 계획된 일정도 금이 가기 마련이다. 우리 일행이 머릿속으로 구상한 대로 움직였던 일정은 아마도 첫 이틀 사흘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2일차 오후부터 이미 우리의 여행계획은 약간의 수정이 불가피했다. 오후 일정이었던 마우나케아 화산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게 된 것. 오전 물놀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해결한 뒤, 우리가 향한 곳은 아카카 폭포다. 일정을 생략할지 말지 고민했던 목적지로, 그럼에도 숙소와 가까워 하와이에 도착한 첫날 짐을 풀고 잠깐 들를까 했던 곳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비행기의 연착과 아버지의 가방 분실로 그 계획은 자연히 무산되었다. 아카카(Akaka). 우리말로 하면 갈라진, 금이 간, 분리된 등의 의미가 된다. 빅 아일랜드의 동쪽으로는 실핏줄처럼 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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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분실(紛失)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3. 09:54
9월 3일 휴일에 남기는 기록. 힐로에 도착한 첫날은 별다른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렌트카 영업소에 백팩을 두고 온 사실을 숙소에 도착한 뒤에야 알아차려서, 렌트카를 빌린 장소로 다시 차를 몰고 가야 했던 것이다. 영업소에 전화를 걸어보니 다행히도 불과 몇 시간 전 키를 건네 주었던 직원이 보관하고 있단다. 미국에서 분실물을 찾다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팁 문화를 잘 모르더라도 귀중품을 찾아준 사람에게는 사례를 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이기도 하건만, 아버지가 되찾은 백팩에 들어있던 현금 중 소액을 백발의 직원에게 건네도 직원은 꽤나 완강하게 거부했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길에 안도하면서도 나에게 미안해 하셨고, 나는 그런 모습에서 아버지의 나이듦을 또 한번 곁눈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