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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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일상/book 2023. 3. 19. 11:31
모가지가 긴 초병과 나뭇결이 고운 장롱과 이 조화롭던 윗방이 잃어버린 낙원의 한 장면처럼 가슴 뭉클하게 떠올랐다. 천 년을 내려온 것처럼 안정된 구도에 익숙해진 나의 심미안에 조약한 원색으로 처바른 반닫이는 너무나 생급스러웠다. —p.56 말세의 징후가 도처에 비죽거리고 있었다. 나하고 동갑내기를 멀리 시집보낸 소꿉동무 엄마가 나를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내 나이에 시집을 가다니. 그때 나는 겨우 열네 살이었다. 그러나 시골에선 조혼이 유행이었다. 극도의 식량난으로 딸 가진 집에선 한 식구라도 덜고 싶은데 정신대 문제까지 겹치니 하루빨리 치우는 게 수였고, 아들 가진 집에선 병정 내보내기 전에 손이라도 받아 놓고 싶어 했으니까. —p.179 개성에 미군이 들어온 건 삼팔선을 잘못 그어서 그렇게 된 거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