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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m'en fous pas mal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1. 3. 21. 22:46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George Bernard Shaw# 칼 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수고」(1844)
「신성가족: 비판적 비판주의에 대한 비판」(1844)
「공산당선언」(1848)
「철학의 빈곤」(1847)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51-52)
「자본론」(1867)
「독일 이데올로기」(1845-46)
# 소유욕에 관한 첫 번째 기억
3학년이 되어 전학을 가기 전까지 처음으로 다녔던 초등학교는 일제에서 해방된 같은 해에 설립되어 공립으로 운영되는 학교였다. 빨간 벽돌에 베이지색 페인트칠을 더한 매우 낡은 외관을 하고 있던 학교는 운동장만큼은 손색 없이 넓은 곳이었다. 어쨌든 당시 나는 주소지 변경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바람에 2학년까지, 어린 아이 걸음으로는 40~50분쯤 되는 초등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렇다보니 학교생활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아무래도 동네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는 점이었고,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통학하는 방면으로 등교하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러던 하루는 정문 앞 두 갈래의 도로 가운데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은 왼쪽 내리막길의 막다른 끝에 위치한 시영 아파트에 갈 일이 있었다. ‘친구’의 초대가 있던 날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단정한 고수머리에 날렵한 눈매를 한,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보아도 말쑥한 외모의 친구였다. 등교 여건상 열악했던 당시 교우관계로 미뤄볼 때, 이 친구와 관계가 얼마나 오래 됐었는지 굳게 이어졌었는지는 전후에 대한 기억은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 친구에게 초대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기억으로 나에게 ‘놀이’라는 것은 굉장히 어색한 무엇이었다. 편안히 상대를 마주하는 법, 내 느낌에 충실히 반응하는 것, 그 안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것 등등이 말이다. 덧붙여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내 주변의 손닿는 곳에는 장난감이 없었고 얻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어쨌든 시영 아파트라는 특성상 그리 넓지 않은 방에서 친구와 이런저런 ‘놀이’를 했던 몇 가지 기억이 난다. <월리를 찾아서>를 보며 함께 월리를 찾아봤던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리고 분홍색 껌을 접착테이프처럼 돌돌 말아 놓은, 일종의 불량식품을 갖고 소꿉장난 하듯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강렬한 소유욕을 느낀 건 아주 예상치 못한 대목이었는데, 그 순간 이 테이프껌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도둑질에 대한 충동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강렬한 욕구가 일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 이면에 감춰져 있던 건 아마도 친구에게 ‘내가 이걸 갖고 가서 놀아도 될까?’라는 협상 또는 부탁, 가벼운 ‘놀이’에 대한 너무나 큰 두려움과 주저함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생각을 발화(發話)할 수 없기에, 소유를 적절히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곤 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럴 때가 있다. 아니, 사실은 누구나 그렇다. 의지가 좌절되고 소유가 충족되지 못하는 경우는 현대사회에 흔하디흔하다. 다만 오랫동안 써온 물건이나 매일같이 썼던 물건을 버리게 되거나 그것들이 눈앞에서 보이지 않을 때, 심지어는 누군가에게 물건을 빌려줄 때조차 종종 가벼운 초조함과 떨림을 느끼면서 내게 ‘소유’라는 건 무엇일까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어떤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보다는 나의 ‘생각과 말’을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족스러움이 늘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내 생각과 내 말을 적절한 시간과 장소 안에 배열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바깥에 머무는 것들이라도 확실히 소유해보려고 하는 의식으로 발로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처럼 말을 대신해 글을 쓸 때나마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푸는 기분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몸이 사람 형상을 한 얇은 막이라고 한다면, 내뱉지 못한 생각과 말로 인해 이 얇은 막이 부풀어오르고, 그래서 팽팽히 당겨지는 것같은 위태로움과 갑갑함이 들 때가 있다. 이 얇은 막은 겉으로 보기보다 무쇠만큼 단단해서 생각과 말을 바깥으로 단 한 방울도 흘려보내려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나'이지만 나로서 존재하는 것 같지가 않고, 이는 괴로운 일이다. 하루는 이 얇은 허물을 어떤 식으로든 벗어던지기로 결심했다. 그 허물을 벗겨내면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던 내용물이 흘러내려 바닥에 흥건히 고일지, 꽉찬 윤곽으로 버티고 있을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무언가를 마주하게 될지 아무것도 모른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얇은 막을 이대로 둘 수는 없겠다는 강렬한 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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