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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신촌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1. 4. 20. 00:20
어느덧 봄이 무르익어 진자(振子)운동을 하듯 서늘한 바람과 따듯한 바람이 낮밤으로 오락가락하던 것도 점차 따듯한 기운으로 기울어 간다. 덩달아 아직은 스산한 바람이 더 머물러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봄이 되었다는 것은 이사철이 되었다는 것이고 채 2년이 되지 않은 신촌 생활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벌써 크고 작은 짐들을 세 차례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왔고, 이제는 용달차를 구해서 처분하지 않은 큰 가구들을 본가로 보낼 일만이 남았다. 사실 지금의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기로 한 건 지금에 와서는 대단히 만족하지만, 그렇게 결정하기 전까지는 좀체 내키지 않았다. 신촌에 두고 와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방안에 있는 물건들은 이삿짐으로 부칠 수 있다. 하지만 신촌에 머무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들렀던 장소, 흘려보낸 시간들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와야 한다. 2년이 안 되는 사이에 이 공간에 이만큼 애착을 갖게 되었다는 게 나로써도 신기할 만큼 이곳 신촌이라는 장소에 정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신촌은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곳인 것 같다. 비록 이곳에 온지 3개월쯤 되자 코로나 때문에 거리의 활기도 많이 가라앉았고 이 동네의 원래 분위기를 온전히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나는 도시의 편리함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번잡함은 좋아하지 않는다. 20대 시절을 보내면서 언뜻 본 신촌은 젊음의 거리라고 하기에는 획일적인 프랜차이즈 가게와 학원이 밀집한 정돈되지 않은 번화가 정도였다. 특히 바로 인접한 홍대 상권이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신촌로터리 일대의 낙후지를 벗어난 양화대교 북단의 왕복 8차선 도로 양 옆으로 높은 빌딩이 올라설 즈음에 학교를 다녀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 즈음에는 약속을 잡아도 신촌보다는 홍대에서 만나곤 했었는데, 지하철역으로 불과 한 정거장 차이밖에 나지 않는 두 지역 사이에서 딱 그만큼의 심리적인 거리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직장에서 교통이 편리하면서 통근거리가 적당하고 가격이 합리적인 곳을 알아보다 신촌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처음 신촌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적응을 하기 위해 이런저런 가게 탐방들을 했었다. 조용한 카페도 가보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 나오는 식당을 찾아다녀 보기도 했다. 그중 몇몇 곳은 단골이 되었고, 가게주인과도 대화를 틀 정도로 친해지기도 했다. 특히 종종 식사 대용으로 먹었던 샌드위치 가게 아주머니가 많이 떠오를 것 같다. 아마 더 신촌에 머물지 않게 되더라도 이 샌드위치 가게는 종종 찾아갈 것 같기도 하고. 고달픈 직장생활과 미래에 대해 내가 느끼는 불안을 시시콜콜 늘어놓을 수는 없었지만, 샌드위치 가게 아주머니는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늘 잘 될 거라며 격려를 해주셨다. 벌써 안 간지가 좀 오래 되었는데 언제라도 찾아가고 싶다. 그밖에 비건 음식을 알아보겠다며 들렀던 비건 베이커리, 낡은 상가 건물 꼭대기에 자리잡은 가격 저렴한 카페, 종종 약을 사기 위해 들렀던 약국, 용기 뚜껑을 덮으면 반숙계란이 터질 정도로 밥을 꽉꽉 채워줬던 도시락집, 볶음밥을 테이크아웃 해가곤 했던 태국요리집, 인근의 독립영화관들 모두 기억 한켠에 자리잡을 것이다. 지금은 신촌의 로터리로 등분된 다섯 구역을 손바닥 안을 들여다보듯이는 아니더라도 찾아다닐 수 있다.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헌 시간의 파편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출발, 새로운 만남,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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