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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몰렸다면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1. 2. 20. 07:03
L'homme n'est pas fait pour penser toujour.
Quand il pense trop, il devient fou. (George Sand)어떤 초원에 있었다. 풀포기도 조금 있었고 몇 그루 되지 않는 나무도 있었다. 황톳빛 성긴 모래알들이 메마른 땅 위에 별뜻없이 흩어져 있었던 것 같다. 지평선도 해안선도 보이지 않는 곳에 고립무원(孤立無援)으로 서 있었다. 수풀이 바람결에 아주 느리게 흔들렸고 바람이 부는 소리도 아스라이 들렸지만, 살아 있는 것의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하늘은 아무런 색깔도 띠지 않았다. 차라리 여기가 벼랑 끝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깎아지르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눈을 질끈 감고 경계 너머 망각 속으로 내달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여기 초원에서는 그 어디로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 아무리 시선을 돌려보아도 끝을 알 수 없는 광막한 공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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