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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일기 : Festina lente!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0. 12. 31. 10:08
#1. 불완전한 자유
말뚝에 단단하게 고정된 족쇄에 발목이 묶여 있어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발목에 족쇄는 남아 있지만 이제는 말뚝에서 벗어나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2. Schadenfreude[불편한 기쁨] —인간의 오만함에 대하여
전염병이 돌 때마다 몰살되는 수천 수만 마리의 가축들, 생활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실험용 비글들과 안락사되는 유기견들, 유전자를 조작한 농산물들, 핵폐기물과 원전에서 바다에 내보내는 냉각수,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한껏 투여한 가금류들, 온갖 정체 모를 원산지가 뒤범벅된 음식물 쓰레기들, 분리되지 않은 채 함부로 버려지는 처방약들, 하수구를 통해 모여드는 대도시의 배설물들, 화학처리를 거치지 않고 지역하천으로 흘러드는 공장폐수, 화석연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냉장고와 에어컨에서 뿜는 프레온가스, 모리셔스를 뒤덮은 유조선의 시커멓고 진득한 기름띠, 토양의 양분을 재빠르게 소진시키는 화학비료들, 캘리포니아 태평양 앞바다에 우리나라 면적보다 훨씬 크게 무더기를 이룬 미세플라스틱, 밤하늘을 뒤덮은 광공해, 여러 스마트기기에서 나는 전자파, 포장용기에 함유된 이름조차 모를 환경호르몬들, 침구 매트리스에서 검출된 라돈 성분, 세계 도처에서 대규모로 이뤄지는 인간살상과 이로 인한 난민 그리고 위생문제, 현대약에 내성을 늘려가는 슈퍼박테리아, 여름 내내 이어진 대형산불로 인해 황폐해진 땅, 스티로폼이나 비닐과 같은 알록달록한 합성수지들, 원인도 한두 가지가 아닌 듯한 사시사철 미세먼지, 착색과 착향을 위해 활용되는 유해한 도료들과 안료들, 세척을 위해 화장실에서 씻어내는 락스와 표백제 그리고 주방의 각종 세제들, 간편한 종이컵과 일회용 빨대까지.
당장 매일 손에 쥐는 스마트폰이 어떤 공정으로 어떤 사람에 의해 며칠동안 만들어지는지도 모르고, 아침에 먹는 빵에는 어떤 합성 효모가 쓰였는지 모르지만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런 가깝고 복잡한 것들은 모를수록 그리고 알 기회가 있더라도 무시할 수록 내 삶은 세련되고 우아하고 편리해진다. 하지만 내 주변세계에 대한 이해가 줄어드는 동안, 내 주변세계의 균형이 어느 순간 휘청이더니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지구적인 문제 하나조차 해결하지 못하는데 지구 바깥을 아는 것—명왕성 촬영에 성공한 어느 탐사선의 이야기—은 무엇이며, 보이지 않는 미립자의 세계로 파고드는 것—원자보다 작은 쿼크와 힉스를 연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하여 인간만이 편하기 위해 만들었던 앞서 나열했던 모든 것들이 분해되고 쌓여서 다다르는 종착점은 어딜까. 그 많은 것들은 어쨌든 '뭔가'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요소요소들이 최종적으로 유례 없는 질병이라는 하나의 집합체로 발현된 것이 아닐까. 우리가 과연 육체적 질병에만 시달리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물음표를 덧붙일 필요도 없다. 점점 더 과격해지는 의견 대립과 분열, 또 다른 형태의 질병에 대한 예고.
하루는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되지 않으려면 가급적 생선의 내장이나 알을 먹지 말라는 어느 의사의 충고를 들으며 정말이지 우리가 되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고 느꼈다. 언젠가는 자연산 활어가 인체에 '위험'해져서 바다가 아닌 곳에서 양식된 생선밖에 먹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또 미래의 화석 연구에서는 이런저런 어패류의 단단한 부위에 섞여 있는 정체불명의 플라스틱조각이 연구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되감기를 할 게 아니라면 늘 그래 왔듯 우리는 망각을 택하겠지만 지금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
#3. 죽음과 삶
우리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미래와 마지막 과거,
그리고 영원한 현재
#4. 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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