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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의 일기: 인생의 회전목마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4. 19:18
# 대부분의 시간 시험이나 과제 준비에 쏟은 하루. 오늘은 혼자서 점심을 먹고 있는 J를 발견하고 앞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J가 영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인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그녀가 영어를 잘하기도 하고 교환학생 신분으로 이곳에 와 있다는 점 때문에 그녀가 프랑스인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는 심지어 파리 출신이라고 했다. 그녀의 영어를 들어보면 영어로 소통을 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데, 내가 이곳에 와서 프랑스어를 쓸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걸 얼마전 알고서는, 내 프랑스어가 부족함에도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천천히 대화를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파리에서 지내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동안 내가 종종 느끼는 갑갑함과 비슷한 걸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여기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많은 외국 학생들은 (심지어 그들도 자국에서 부족함 없이 교육을 받아 왔음에도) 이곳 학생들의 엘리트 의식에 당혹스러움을 토로할 때가 많은데,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다는 J조차도 이곳 학생들과 소통하는 게 스트레스라고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미 다른 학생들에게도 너무나도 익히 들은 이야기지만) 이곳 학생들은 대체로 폐쇄적으로 소그룹을 이뤄 지내기 때문에, 자신이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감안해주지 않을 때가 많다고 했다. 특히 마땅히 공유되어야 할 아주 기초적인 수업 정보나 학교생활 전반에 관한 정보가 외부인—심지어 그게 프랑스인이더라도—들에게 공유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이전에도 보면 정말 프랑스 학생들끼리도 원래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 아니면 가차 없이 묵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나 나나 이곳 교수들에 대해서는 크게 만족한다는 점이었다. (교수들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점은 외국 학생들 사이에서도 대부분 일치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많은 교환학생들이 이곳 학생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결국은 강한 불만의 우회적인 표시다—에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한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게 뭔지는 알 것 같다. 말로 뱉지 않을 뿐 냉대라고 할 수 있는 이곳 학생들의 무심함,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길들이기도 하는구나, 싶을 정도의 상냥함을 가장한 완고한 모습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완전한 판단을 내리기에 내가 이 사람들과 그만큼 깊숙이 엮여본 적이나 있나 싶다 개인적으로. 유럽 학생들에 비해 나는 이곳 환경이 전반적으로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에 학생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낄 겨를도 그리 없었다.
게다가 나 또한 불쾌한 경험도 있었지만 반대로 고마움을 느꼈던 경험도 많다. 학기 초반 미로 같은 학교의 길들을 알려주던 수학과 교수는 물론이고, 처음 청강하러 들어간 교실에서 어정쩡하게 있는 나를 보고 싱긋 웃어주던 학생, 보안 문제로 세탁실을 출입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대신 직원을 설명해주던 학생도 있었다. 타국에 와서 고충을 느낀다는 건 그저 자신이 소화하지 못하는 이곳의 무언가가 있다거나, 나아가 내가 살아오던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저항감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프랑스 주변에서 온 학생들은 프랑스라는 나라를 나보다 아주 조금이나마 더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더 빨리 포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한국사람인 내가 중국이나 일본을 보며 발견하는 미묘한 차이에 때로 거부감을 느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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