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6일의 일기: 마르모탕 모네(Marmottan Monet)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6. 19:33
# 이른 아침 고동색 10호선을 타고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 다녀왔다. 파리 서부로 갈 때마다 6호선을 많이 이용했던 것 같은데, 10호선을 타고 파리 서부로 나가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메트로를 타고 가다가 학교에서 매우 가까운 클루니 에 소르본(Cluny et Sorbonne) 역이 예쁘다는 걸 처음 알았다. 보통 내가 이용하는 메트로 노선은 알짜배기 7호선 뿐이니 다른 노선은 잘 알지 못한다. 메트로를 타러 가는 길에 문화인류학 수업의 조교 L을 마주쳤는데 어색하게 인사했다.
#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은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는데, 시험공부 생각에 집중을 잘하지 못하고 조금 서둘러 다녀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모네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는 <해돋이(soleil levant)>라는 작품은 지금 덴마트의 스카겐 미술관(Skagens Kunstmuseer)에서 열리는 특별전을 위해 옮겨져 있는 상태여서 그건 그런 대로 아쉬움이 들었다. 그렇기는 해도 지하 1층에 전시된 모네의 작품들은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것과는 조금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2층에 전시된 작품 가운데에서는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라는 작가를 재발견했다. 다른 한편으로 모네 미술관은 발드루아르 지역의 샤토처럼 각 방을 예쁘게 꾸며놓아서 다른 미술관과는 또 다른 느낌이 난다.
# 라늘레 정원(Jardin du Ranelagh)을 가로질러서 팡테옹으로 돌아오는 길은 불랑빌리에(Boulainvilliers) 역에서 RER C 노선을 타고 팡테옹 지역으로 되돌아왔다. RER C 노선은 케네디 대로 역을 지나서는 센 강 위를 지나가는데, 강 위에서 에펠탑을 바로 볼 수 있었다. 나는 생미셸 노트르담 역에서 내렸다. RER 노선들은 정기적으로 예고된 공사가 많기도 하고 파업으로 인한 지연도 잦은 편이어서 평소 RER을 잘 이용하지 않는데, 파리 16구는 어쨌든 5구와는 거리가 멀어서 모처럼 RER을 탔다. 팡테옹 지역으로 돌아온 뒤 후딱 점심을 해결했다.
# 늦은 오후에는 모처럼 14구에 갔다. 함께 재정학 수업을 듣는 N의 연구실에서 시험공부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공부는 어디까지나 혼자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N에게 연락이 와서 같이 공부하겠냐고 했을 때 그러자고 했다. 프랑스에 온 뒤로 혼자 시내는 시간이 상당히 늘기도 했고, 아무리 액면상 다 이해하는 영어라도 ‘영어로 공부’를 하는 건 뇌의 또 다른 영역을 필요로 하는 느낌이라서 함께 공부를 하다보면 공부 효과가 또 다를까 싶었다. 시험 준비에 필요한 총 다섯 개의 주제 가운데에서 이날 한 꼭지밖에 다루지 못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동기부여도 되고 공부 효과도 있었던 만남이었다. N이 어려워하는 계산문제는 내가 도와주었고, 내가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이론틀 부분에 있어서는 N이 분명하지 않은 부분들을 다시 한 번씩 짚어주었다.
N의 연구실은 건물의 6층에 위치해서 옥외 계단에서 햇빛을 쬐기에 매우 좋은 날씨였다. 기술적인 계산문제를 풀다가 부하가 걸린 N은 잠시 쉬자고 했다. 나는 평소 14구 학교 건물의 2층 이상을 이용해본 적이 없는데, 6층 옥외에서는 14구와 파리 근교의 풍경이 아주 시원하게 보였다. 게다가 날씨도 너무나 쾌청한 날이었다. 그녀는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해서 내게 자기 사진을 몇 장 찍어달라고 했는데, 내가 찍어준 사진을 너무 마음에 들어 하길래 기분이 좋았다. N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보기보다 그녀가 굉장히 야심 많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고, 그런 모습을 포장하지 못하는 투박함에 순수함 같은 게 느끼기도 한다.
'Vᵉ arrondissement de Paris > Mai'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월 8일의 일기: 포케(Poké) (4) 2022.05.08 5월 7일의 일기: 오페라(Opéra Garnier) (0) 2022.05.07 5월 5일의 일기: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0) 2022.05.05 5월 4일의 일기: 인생의 회전목마 (0) 2022.05.04 5월 3일의 일기: 이상한 추격전 (0) 202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