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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의 일기: 오페라(Opéra Garnier)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7. 18:44
# 오전을 공부에 시간을 쏟고 오후에는 오페라 가르니에를 다녀왔다. 그 동안 국제처에서 주관하는 행사에는 가급적 행사에 ‘안’ 참여했었다. 학기 초 행정지옥 속에서 학교측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얻을 수 없겠다고 판단한 뒤로 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회피해 왔다. 하지만 오페라 가르니에는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던 데다, 2만 원이 넘는 입장료를 학교 측에서 지불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해서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파리의 거의 모든 박물관들이 그러하듯 학생할인 적용이 만 26세 이하까지 적용되는데, 나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아서 프로그램 신청을 하면서도 일단은 참여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다. 학교 측에서도 신청자의 연령을 기입하라고 되어 있기도 했었고. 그랬던 게 몇 주 전 내게도 오페라 방문 프로그램에 대한 일괄 안내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내게 도착한 메일이 정말로 정확히 전송된 건지 프로그램 당일인 오늘까지도 반신반의했었다.
다행히 이런 얘기를 했더니 같은 층 기숙사에 사는 D가 국제처 직원에게 연락을 취해 정보를 대신 확인해주었다. 오늘 또(?)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국제처 직원들 상당수가 이곳에 온 외국학생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 국적의 직원들을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독일 출신의 D는 마치 이곳이 독일인 양, 직원에게 독일어로 정보를 꼬치꼬치 물어봐 주었다. 다시 한 번 높은 정보격차의 벽—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을 크게 느끼며, 친절을 베풀어준 D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이런 사소한 정보를 챙길 겨를이 없었던 내게는 정말 고마웠다.) 오늘 오페라에 도착했을 때 또 다른 직원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학기 초 문의를 할 때까지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탈리아 억양이 꽤 강해서 이 사람은 이탈리아 학생들을 전담하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유럽의 적잖은 학생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유럽 지역의 여러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데다, 학교 시스템 자체도 이들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서 그들로서는 정말 편리할 것 같다고, 그런 그들이 이곳 적응이 어렵다고 하는 건 엄청난 과장이라 생각했다.
# 오페라 방문에서 후세인(Hussein)이라는 이란 출신의 학생을 만났다. 이미 HB의 회화 수업에서 서로 안면이 있었다. H는 박사 학위를 딴 뒤 1년간 이곳 연구실에 체류하면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데, 말을 들어보니 나보다도 더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로 통성명을 하는데 무척 반가워했다. 물론 이미 이탈리아, 영국 국적별로 소그룹이 만들어진 약속 장소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던 나 역시 그가 반가웠었다. 그래도 나는 이곳의 박물관이며 공원이며 혼자서라도 이곳을 돌아다니려는 노력은 하고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시기에 도착했다는 그는 그런 시도조차도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이곳 물가가 너무 비싸서 바깥 활동을 ‘안’ 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나는 그냥 나중 생각 없이 돌아다니는 편이다.)
H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었는데—영어로 이야기를 했다—그는 한국문화가 이란에서 인기가 많다는 점을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인사치레겠지만 사실 이란이 아니라 다른 외국 친구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눠도 요새 이런 말들을 정말 많이 듣곤 한다. 거기에 더해서 H는 한국 전자업체들이 이란에 많이 진출해 있는데 이란 사람들이 한국 가전을 매우 선호한다, 한국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사업하는 방식을 보면 철두철미함과 부지런함이 대단하다 (그에 비해 프랑스의 시간관념은 정말 종잡을 수 없다), 한국 물건은 믿고 쓴다 등등등 부담스러울 정도로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반면 내가 이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추상적인 것들 뿐이어서 조금 무안했다. 서울에 가면 테헤란로가 있는데 테헤란에도 서울로가 있을 거다, 중동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이란에 정말 여행을 가보고 싶었는데 (실제로 이건 거짓말은 아니었다) 여러 입국 절차상 문제로 사우디나 이란은 아니어도 인도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 가본 적이 있다, 다만 이스라엘과 이란과의 관계가 매우 나쁘다는 건 알고 있어 유감이다, 등등.
# H가 잠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번에는 막심(Maxim)이라는 프랑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기숙사에 있는 역사 전공생 막심과는 또 다른 철학 전공자다. 그는 그냥 이 학교 소속인데 오페라 방문 프로그램을 신청한 모양이었다. 이미 외국학생들 안에서도 각각 무리가 지어진 가운데, 그 역시 나나 H와 마찬가지로 동행인이 없는 상태로 혼자 있었다.
얘기를 나누다가 서로 영화를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를 발견했는데, 심지어 그나 나나 자주 찾는 영화관도 같았다. 필모테크 뒤 카흐티에 라탕과 르 셩포. 내게 <게임의 규칙>과 같은 고전 영화는 봤느냐고 묻길래, 얼마 전에 보러 가기는 했는데 가서 잠들다 나왔다고(..) 대답했다. 내가 에릭 로메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한국 영화 얘기가 나왔는데, M의 할머니는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찾아본다고 본인이 말하면서도 흐뭇하다는 듯이 얘기했다. <기생충>에 관해서는 인물의 선악이 뚜렷하지 않은 점이 정말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이후 해설이 시작되면서 대화는 끊겼지만 짧은 대화에서 뭔가 단호하면서도 진중함이 묻어나는 친구였다.
지금 떠올려보면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자신이 미친 것 같다(fou)고도 했는데, 프랑스 철학이 아닌 레비나스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말에서 또 한 번 내심 놀랐다. 사실 이곳은 장 폴 사르트르나 미셸 푸코 등 철학자가 배출된 곳임에도, 막상 학생들에게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었나 싶을 만큼 무덤덤한 반응인데, 이번에도 역시 M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가끔 보면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행동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좀 더 프랑스어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이건 여기서 매분 매초 누누이 느끼는 바다—어쨌든 해설은 유익했다. 가장 먼저 건축물로써 오페라에 대한 소개를 한다. 보르도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오페라 가르니에가 빅토르 루이(Victor Louis)라는 건축가에 설계되었다는 건, 이미 보르도 여행을 알 때 알았던 사실이었다. 19세기 후반 오페라 극장을 지으면서 설계에 역점을 두었던 건 외관상으로는 오스만 거리와 통일성—회색 건물 파사드—을 유지하면서도 내부만큼은 화려하게 색깔을 입히는 것이었다는데 실제로 그랑 살롱(Grand salon)은 엄청나게 장식적이다.
오페라 가르니에가 건축학적으로 이전 극장들과 가장 구별되는 점은, 연극 시설—무대와 객석—뿐만 아니라 사교 공간(foyer)를 굉장히 크게 둔 극장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페라 가르니에 이전까지 연극 시설과 무관하게 극장에 사교 공간을 크게 둔다는 발상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르주아 문화가 꽃피던 시기 극장에서 연극만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 외적으로 즐길 거리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연극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보다도 훨씬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사교계를 주름잡던 마담들과 마드무아젤들이 어떤 에티켓들을 지켰었는지 우스꽝스럽게 설명한다.
건축학적 의미 뿐만 아니라 실제 이곳의 상연되었던 중요한 작품들과 그 의의에 대해서도 해설사가 이야기를 했는데 도입부의 해설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바그너에 관한 설명이 매우 집중적으로 이뤄졌고, 그가 파리의 오페라에서 상연했던 연극들은 기존의 오페라들과 달리 처음으로 무대 앞쪽 오케스트라 비중을 크게 두었다는 점에서 이곳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이전 오페라들과 차별화된 뜻깊은 시도가 이뤄졌다고 했다. 또 17세기 파리 오페라단이 루이 14세에 의해 설립되었기는 해도, 루이 14세는 기본적으로 ‘춤(danse)’을 너무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페라에 관심을 갖고 가꿨던 건 그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였다고 한다. 클래식의 고향 오스트리아에서 온 그녀에게 오페라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던지도 모른다고.
# 해설을 온전히 소화하기에는 고유명사도 너무 많이 등장하고 전문적인 용어도 많이 등장했다. (그래서 애당초 영어 해설을 신청했던 것으로 분명 기억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프랑스어 해설에 할당되었으니 이곳 행정은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해설 후반부에 짤막한 질의응답이 있었는데, 해설사가 오페라와 오페레타의 차이를 언급하자 M이 오페라 코미크(Opéra comique)와 오페라 부프(Opéra bouffe)의 차이는 뭐냐고 해설사에게 물었다. 설명하는데 애당초 일반적인 오페라조차도 본 적이 없는 내겐 버거운 주제였다. (해설사가 성심성의껏 답변을 하는데, 이런 유명 관광지에 오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해설사들이 의외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은 어쨌거나 인상적이다.) 오페라 코미크는 일반 대중이 편히 오페라를 즐길 수 있도록, 특히 세계대전을 거치며 심리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이 잠시나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 정도만 기억해 두었다.
또 오페라 가르니에에 들어가는 이 수많은 석재들을 어디서 공수해 왔는지에 대한 해설도 있었다. 이 부분은 나도 늘 정말 궁금했던 대목이었다. 도대체 이런 화려한 건물에 들어가는 셀 수 없이 많은 돌덩이들을 다 어디서 갖다 쓰는지 파리 시내 이곳저곳을 다닐 때마다 궁금했었다. 일단 파리 일대에서는 흰 대리석(marbre blanc)이 흔하지 않다고 한다.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가져와야 했는데, 특히 몽펠리에를 비롯한 랑그독(Languedoc) 지역에서 이런 흰 대리석이 많이 난다고. 기본적으로는 랑그독 지방에서 많이 가져와서 썼고, 또 벨기에 지역에서도 이런 흰 대리석이 많이 나는 편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 곳을 더 언급했던 것 같은데—프랑스에서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유럽 지역이었다—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 오페라 지역까지 나간 김에 장도 보고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진이 다 빠졌다. 이곳에 도착한 뒤로 뭔가 크게 한 게 없는 것 같은데도 항상 뇌가 풀가동되고 있는 느낌이다. 게다가 오늘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한다는 게, 이야기할 당시에는 즐거웠는데 기숙사에 돌아와 혼자가 되고 보니 굉장히 에너지 드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공용주방에서 낯익은 얼굴들과 더 이야기를 나눌 법도 한데, 뭔가 과부하가 걸린 사람처럼 생각해둔 공부는 엄두도 못 낸 채로 저녁을 먹은 뒤 기숙사에 한동안 뻗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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