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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의 일기: 포케(Poké)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8. 19:51
# 일요일 아침 공부를 마친 뒤 점심을 사러 가다가 몽주 광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어버이날인 오늘이 이곳에서는 전승기념일이어서 그렇지 않아도 일요일에 문을 닫는 곳이 많은데 문을 연 곳이 더 줄어든 느낌이었다. 몽주 광장의 일요일 시장도 오늘은 열리지 않으려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착해보니 일요일이면 늘 찾아오던 가게들과 장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포케(Poké)를 사들고 되돌아 오는 길에 당장 장볼 거리가 없음에도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소고기가 들어간 갈레트(5유로) 하나와 배 주스(2.8유로) 하나를 샀다. 요즘 먹쇠가 들었는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서 미리 요기할 거리(petite faim)를 샀다.
# 파리에는 포케 가게가 참 많은데 사실 이전까지 포케를 먹을 생각을 못했다. 아니, 하질 않았다. 양이 너무 적어보인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곳에 와서 내가 대식가라는 걸 수시로 깨닫는다..) 하지만 오늘따라 요리하기가 더 귀찮아 학교 근처 포케 가게를 찾았다.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재료가 왜 이렇게 많은지, 일단은 흰 쌀밥을 베이스로 한 다음 연어에 콩, 파인애플, 순무, 참깨 등이 올라간 기본 메뉴를 주문했다. 먹어보니 왜 이걸 여태까지 안 먹었나 싶을 정도로 식사로 괜찮았다. 나는 ‘포케’라고 해서 일본에서 온 신종 스트리트푸드인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와이안 요리라는 걸 먹고 나서 인터넷에 찾아보며 알았다. ‘포케’라는 말도 하와이어로 그냥 ‘잘게 썰어놓은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다만 기본 메뉴의 중사이즈가 12유로인데, 그다지 조리가 필요한 요리는 아니어서 가게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8유로 안팎에서 메뉴를 고르게 될 줄 알았다. 12유로면 우리나라돈으로 대략 1만 6천원인데, 가격이 터무니 없다 싶으면서도 바깥에서 사먹는 다른 음식들이 기본 13~15유로에서 시작하다보니 그냥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이곳의 비싼 물가에 아직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 오후에는 낮잠을 2시간 넘게 잔 것 같다. 낮잠을 자는 편이 아닌데 요새 너무 피곤하던 차라, 집에 화상전화를 하고나서 절로 눈꺼풀이 감겼던 모양이다. 낮잠을 잔 후 다시 밖으로 나와 소르본 대학 앞 프레타 멍제 테라스에 앉아 기말과제를 하고 있는데, 누가 계속 나를 향해 ‘Hello, my friend~’하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는 테라스에 앉아 있는 손님을 상대로 구걸하는 일이 전혀 드물지 않다. 어떤 경우는 낚싯대를 늘어뜨려서 테라스에 앉아 있는 손님에게 돈 담을 종이컵을 내밀기도 하니까.
그냥 외면하고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집요하게 외치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기어이 내 테이블 앞까지 왔다. 알고 보니 나와 수업을 들어서 서로 안면이 있는 이탈리아 친구 디노(Dino)였다. 그의 말투가 너무 사람 구슬리는 말투여서 아무리 들어도 구걸하는 목소리로 들은 것이다. 생미셸 거리에서 장을 보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인 모양이었다. 작심하고 깡그리 무시하고 있던 터라 무안해진 나는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잠깐 얘기를 나눠보니 그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면서 돈 되지 않는 전공이라고 얼굴을 조금 찌푸리며 얘기했는데, D를 만난 김에 말동무라도 할 겸 짐을 싸서 같이 기숙사로 돌아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D를 먼저 보내고 과제 나머지를 마무리한 뒤 저녁 여덟 시가 좀 안 되어 가게를 나왔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친구들에게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는 않는데, 사실 이탈리아 학생들도 뭐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북부에서 왔는지 남부에서 왔는지에 따라서도 학생들 분위기가 많이 다르고—어떤 학생은 프랑스 학생들보다도 단아한 느낌이 나고, 또 어떤 학생은 범접하기 어려운 후줄근(?)한 느낌이 난다, 사실 D는 후자에 해당한다—꼭 남북이 아니더라도 그냥 지역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 같기도 해서 그들 안에서도 꽤 복잡하게 나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부분은 프랑스나 독일 학생들보다는 지역을 막론하고 확실히 다정다감한 느낌이 든다는 점. 더러 인상이 퍽 의뭉스러운 친구들도 있지만 일단 말을 트면 대체로 허물 없이 대한다. 그래서 정서적인 면에서 프랑스나 독일사람들보다는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아니면 영국 학생들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영국 학생들도 얘기를 나눠보면 대체로 좋은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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