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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의 일기: 일단 멈춤(Rappel)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20. 02:00
# 오늘도 도서관과 수업장소를 오가는 일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늘 마지막 문화인류학 수업을 듣고 조교와 짧게 얘기를 했다. 정확히는 마지막 과제에 대한 질문이다. 문화인류학 시간에 배웠던 협동이나 사회적 학습 같은 개념이 내 관심 분야 중 하나인 조직문화와 맞닿아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한 학기 내내 문화인류학 수업은 내게는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은 것이었다. 모든 수업 시간표를 다 짜고도 더 이상의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을 때 끝으로 넣었던 수업이 이 수업이었던 만큼, 망설이기도 많이 망설였고 배경지식이 없어 부담이 되었던 수업이다. 그럼에도 이 수업에 잔류했던 데에는 또 그간의 복잡한 행정문제가 얽혀 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한 학기 동안 이곳에는 물리학, 심리학, 신경과학처럼 다른 학문분과에서 온 학생들도 적지 않았던 걸, 나 혼자만 문화인류학에 배경지식이 없다고 자조적으로 생각했던 게 사실. 아마 내가 느끼는 중압감이 OM 교수와 조교에게도 전달되고도 남았을 게 분명한데, 다른 수업에서와 달리 나는 이 수업 중 질의응답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수업에서의 발표와는 다르게 이 수업에서의 개인 발표는 내 뇌의 수분을 박탈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버거웠다. 여하간 수업이 끝나고 LF 조교에게 기말 과제에 관해 물으니 너무 거창하게 접근하지 않아도 된다며 격려해 주었고, 글의 구성을 짜는 방식이나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 학교 코앞 기숙사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몸을 움직일 겸 팡테옹 방면으로 나섰다. 라데팡스 지역의 시원한 마천루들이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이동거리를 멀게 가져가는 대신 생미셸 거리를 따라 쭉 걷는다. 생미셸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들어갔다. 오늘은 『On Failure: How to Succeed at Defeat』이라는 책이 시선을 잡아 끌었다. 오늘따라 ‘실패에 관한 책’이 내 무의식을 사로잡는 걸 보면 뭔가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의 목차를 보고 살까하다가, 생각해보면 한국에 있을 때도 이런 자기계발/관리 서적은 잘 찾아보지 않았던지라, 불필요한 책 욕심이라 생각하고 더 구경만 하다 서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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