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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일상/book 2023. 4. 13. 22:58
《소피의 세계》 이후로 철학 안내서를 읽은지 정말 오랜만이다. 그마저도 개별 철학서들은 더 읽지 않으니 철학 관련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다. 사실 엑기스를 뽑아 놓은 이런 류의 책들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서가에 한동안 머무를 때에도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다가, 작년 연말쯤에서야 책을 샀다. 《소피의 세계》가 어린이의 시선에서 알기 쉽게 철학을 안내한다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의 시선에서 이해하기 쉽게 철학으로 안내한다. 맥시멀리스트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우리가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거리를 던진다.
책에 소개되는 철학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여러 지역 여러 시대의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시몬 베유에 관한 챕터다. 시몬 베유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접한 건 작년 고등사범학교에 머무는 동안이었는데, 학교 곳곳에 시몬 베유의 이름을 딴 교실이나 사무실이 있었다. 사람의 이름을 딴 건물이나 광장은 프랑스에 흔하디흔다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다지 궁금증을 갖지 않고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읽은 철학서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고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녀의 철학이 내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지점은 '집중'과 '관심'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해 놓은 대목에서였다. 나는 그동안 '집중'하는 데에는 제법 성공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관심'을 기울이는 데에는 젬병이었던 것 같다. 아니 분명히 그렇다. 항상 피로에 쩔어 지내고 무언가에 매달려 있지만, 인생에 어딘가 나사가 풀려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는 아마도 관심가질 대상을 갖지 못한 채 집중할 대상만 찾은 결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 베유의 말대로 생각을 하나로 모아 집중하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용히 관조에 빠지는 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툴고, 집중에 매몰되어 지내다 보면 점점 소진됨을 느낀다.
흔히 신이 존재하냐 존재하지 않느냐, 이성이 선행하느냐 감각이 선행하느냐, 자아가 자신에 의해 규정되느냐 타자에 의해 규정되느냐, 인간은 이타적인가 이기적인가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는 철학 논쟁에서 '관심'이라는 주제는 상당히 기이하고 흥미로운 것이었다. 이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시몬 베유의 글을 찾아보려고 한다.관심은 집중이 아니다. 집중은 강제할 수 있다. ......하지만 관심은 강제할 수 없다.
......집중은 수축한다. 관심은 확장한다. 집중은 사람을 피로하게 한다. 관심은 피로를 회복시켜준다. 집중은 생각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다. 관심은 생각을 유보하는 것이다.
p. 233'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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