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다니며 좋은 경치를 구경해도 결국 드는 생각은 여행이란 내 돈 주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사실 내 옆에 있던 K 팀장의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곧바로 수긍했는데, 처음 가는 출장이 아무리 설렌다 하더라도 장거리 운전을 하고 익숙치 않은 길을 다니다보면 지치게 마련이다. 출장을 가지 않았더라면 사무실에서 했어야 할 업무 전화들은 여지 없이 걸려 온다. 결국 업무의 연장선상인 것이다. 그래도 잡학다식한 K 팀장과의 동행은 그렇지 않으면 심심했을 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부산과 거제를 거쳐 통영에 왔을 때 비는 시간을 이용해 잠시 한산도에 다녀왔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 앞바다에서 처음으로 학익진 전법을 구사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작전이 구상되고 훈련이 이뤄졌던 곳이 바로 제승당(制勝堂)이라는 곳인데, 나는 승리를 제어하고 이끌어낸다는 의미의 제승(制勝)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고, 두터운 초서체로 쓰여진 검은 현판 또한 마음에 들었다.
통영은 작곡가 윤이상이 태어난 음악의 고장이기도 하다. 나는 해마다 윤이상 콩쿠르가 개최되는 시민문화회관이 자리한 남망산을 잠시 산책했다. 요새는 어느 지역을 가도 관광지가 예쁘게 조성되어 있어서 이곳의 산책로 역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걷는 재미가 있었다. 전망대에서는 다도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그 복잡한 해안선에 이 이상 단조로울 수 없는 크고 작은 배들의 새하얀 궤적이 대비된다.
한산도를 오가는 페리선에서 바다 위로 낙조가 수천 수만 갈래로 흩어진다. 하늘에서 떨어진 수만 개의 불덩이가 지상 위에서 뜨겁게 이글거린다. 그것도 다름 아닌 이곳 통영의 차디찬 바다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다도해의 해안선 사이로 윤슬은 수도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그런 풍경 앞에서 약간의 무력감, 약간의 허무함, 약간의 감탄, 약간의 아련함을 느낀다.
군대 훈련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진주라는 도시는 경상남도 안에서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성향이 더 강하기도 하고, 지리적으로는 낙동강을 따라 발달된 부울경 지역과 달리 남강을 중심으로 또 다른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도시 한 가운데에 위엄있게 자리한 진주성, 그 안에서 촉석루(矗石樓)를 떠받치는 의암(義巖)이 만들어내는 지평선의 변조는 이 도시에 남다른 분위기를 가져다준다. 나는 촉석루 일대를 거닐면서 K 팀장이 들려주는 논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전주의 혁신도시로 가면서 잠시 들른 곳이 미륵사지다. 사지(寺址)는 말 그대로 절터를 가리키기 때문에, 사찰이 남아 있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찰은 머릿속에 쉽게 상(像)이 맺히지만, 미륵사지의 경우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미륵사지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두 석탑을 중심으로 가람배치를 그려보자면 위용 넘치는 미륵사의 원형이 얼핏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전라도 지역은 고속도로보다는 국도가 많아 이동거리에 비해 통행료를 아낄 수 있었다. 완도는 국도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전라남도 지역의 여러 섬 지역 중 한 곳이다. 통영이 굴로 유명하다면 완도는 전복이 유명한 지역으로, 완도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보면 다시마며 전복 양식장이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연안을 수놓고 있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양식장에서 투입되고 산출되는 금액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목포 유달산에 바라본 지평선의 서쪽으로는 영암이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신안이 나타난다. 정남향으로 보이는 고하도로는 북항에서 출발한 케이블카들이 빨강 하양의 알록달록한 색깔을 띠며 분주하게 오르내린다. 올 겨울까지도 오게 되리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서쪽 바다의 끝 목포. 이로써 울산에서 시작된 이번 출장의 여정은 나주에서 마무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