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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들—동해주제 없는 글/印 2023. 6. 5. 00:33
# 망상(望祥)의 바다는 몽롱한 은빛 하늘로 인해 푸르름이 바래 있었다. 그럼에도 동해안에서도 큰 축에 속하는 해수욕장인지라, 때 아닌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해안가 앞에 파라솔을 펼치고 진치고 있는 행락객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피서철 대목을 준비하는 상점가에서도 슬슬 분주함이 느껴졌다.
# 나곡(羅谷)의 바다는 하천이 끝나는 지점에 대롱대롱 매달린 형상의 외진 해안이다. 해안가가 넓다고 할 수도 없고, 그마저도 들쑥날쑥 솟아오른 바위들로 인해 해안선이 흐트러져 있다. 그런 한적한 해안가에서 대여섯 명 정도가 바다낚시를 즐기고 있다. 사장(沙場)을 복원하기 위함인지 모래더미가 한가득 쌓아올려진 이곳은 방비되지 않은 채 버려진 곳 같기도 하다.
# 구산(邱山)의 바다를 나는 좋아한다. 월송정의 서사는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지만, 지금의 월송정은 실은 정자가 원래 있던 남쪽으로부터 500미터 된 곳으로부터 옮겨 20세기 후반 들어 새로이 지은 것이다. 이 일대의 해안선은 가느랗지만 길게 맞닿아 있고 백사장 뒤로는 방풍림으로 조성된 소나무가 즐비하다. 바다의 고운 모래알들 위로 메마른 솔방울들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 바다에는 내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없다. 풍경이 단조로운 수평선으로 수렴되면서, 풍경의 변화를 청각으로 더듬어보아야만 할 것만 같다. 나는 청각을 곤두세워 파도소리를 좇는다. 해안선의 끝으로 향해도 파도가 손닿는 거리에 이르기 전까지는 내 바로 앞에서 물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없었다. 월송정 앞바다에서 시원하게 발을 담가본다.
# 월송정은 물의 바다일뿐 아니라 소나무의 바다이기도 하다. 소나무숲 아래로는 가지에서 떨어진 솔잎들이황금빛으로 거대한 바닥을 이루고 있다. 그 거대한 평면은 바깥으로 바깥으로 향하면서 이내 새하얗고 고운백사장과 이어진다. 그 틈바구니를 해풍에 메마른 잔디들이 흩어져 있고, 그 위를 황망하게 갈 곳없는 솔방울들이 나뒹군다. 바다와 나무, 모래가 접면을 이루는 이곳은 월송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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