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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들―서해주제 없는 글/印 2023. 6. 21. 00:09
# 시화(始華)의 바다는 따뜻하다. 바다 정면으로는 뭉툭한 바위섬이 올라 있고, 하늘에는 그대로 멈춰버린 연들과 분주한 갈매기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선을 그린다. 시화호 위로 에메랄드 색으로 페인트칠을 해놓은 송신탑이 도시로 도시로 끝없이 뻗어 있다. 그리고 바다 위로 늦은 오후의 태양이 아낌없이 떨어진다.
# 오이도(烏耳島)의 바다는 혼잡하다. 땅딸막한 등대가 자리한 정방형의 항구에는 수산식당이 즐비하고 그 앞에는 주차된 차량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그리고 호객하는 직원들의 손짓. 부두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흔히 보이고, 조악하게 장식된 꼬마열차가 뱀처럼 가장자리를 누빈다. 그 복잡한 풍경 속에 저 멀리 인천 일대의 높다란 건물들이 두꺼운 띠를 이루며 희뿌옇게 바라다보인다.
# 궁평(宮坪)의 바다는 차분하다. 지금 막 땅거미가 진 바다 위에는 북극성 하나가 청초하게 떠 있다. 하늘은 프러시안 블루에서 핑크와인 빛깔로 수평선과 이어진다. 정박된 배들 너머 어딘가에서 흥에 겨운 음악이 빚은 파동이 적적한 대기에 비집고 든다. 자그마한 정자에서는 바닷바람에 바람(願)을 실어보내는 무당의 방울소리가 제 울음을 내지 못하고 기류에 파묻히고 만다.
# 군산(群山)의 바다를 참 어렵게도 찾았다. 해외여행도 이곳저곳 다녀보았지만 등잔 밑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여행하지 않은 곳들이 많다. 새만금방조제는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고군산군도를 들어가보는 건 처음이다. 이 고군산군도라는 것이 남해의 다도해처럼 큰 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외따로 떨어져 쓸쓸한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썰물이 빠져나간 뒤 바닥을 드러낸 시꺼먼 뭍이 섬과 섬을 이어 외로움을 덜어내는 것 같아 다행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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