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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갠 하루는 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원효대교로 나갔다. 영화 <괴물>의 주된 무대이기도 한 원효대교는 별로 이용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도보로 연결되는 진입로를 가까스로 발견, 난간이 달린 계단을 따라 원효대교에 올라섰다. 해를 등진 여의도의 마천루는 희뿌옇게 빛을 잃어 하나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되어 있었다. 맞은 편 용산 일대의 풍경만이 햇병아리처럼 노랗게 익어간다.
한강 위로는 비가 그친 하늘을 가로지르는 갈매기들이 삼삼오오 떼지어 앉을 자리를 찾는다. 일부는 한강 수면 위에 그대로 주저앉고, 개중 일부는 어지럽게 들어선 다리 위 가로등이나 송신선 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는다. 마포대교보다 폭이 좁은 다리 위로 크고 작은 차량들이 곁을 주지 않고 분주하게 앞을 달린다.
여의도의 풍경이 멀어지고 용산의 풍경이 손에 닿을 즈음 원효대교에서 내려섰다. 강변북로 옆으로는 강변의 느티나무가 개운한 초록을 발산하고 있고, 한강 너머로는 관악산의 윤곽이 말그스름히 떠올랐다. 강변북로 안쪽으로 바로 버티고 선 아파트는 그 소음과 복잡한 풍경을 어떻게 버틸까 싶다가도, 사람과 자연이 부대끼는 이 풍경이 서울답다는 생각에 미친다.
원효대교를 내려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신용산역 지하터널을 가로질러 삼각지역까지 쭈욱 걸어왔다. 비가 멈춘 뒤 찌는 듯한 더위다. 용산만큼 신묘한 풍경을 가진 동네가 있을까 싶다. 바로 앞에는 허물어져가는 상가가 태연하게 늘어서 있는데, 그 정돈되지 않은 풍경 너머로 단정한 고층 빌딩들이 무표정하게 들어와 있다. 집값이 유망한 동네라곤 하지만 어수선한 풍경 역시 서울답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의 풍경은 항상 헤아릴 수 없는 모순 같은 것을 안고 있다. 빈(貧)과 부(富), 미(美)와 추(醜), 신(新)과 구(舊)가 어딘가 조화롭지 않게 섞여 있다. 하나가 끝나는 지점에 예상한 또 다른 하나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또 하나가 나타나는 식이다. 그런 풍경을 바라보는 게 알쏭달쏭 재미있기도 하지만 진저리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서울의 풍경 아닌가 싶다.'주제 없는 글 > 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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