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바지 코뿔소(Rhinocéros)를 끝으로 쿠라시키로 돌아오는 길. 쿠라시키를 요약할 수 있는 키워드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일본 최초의 서양식 미술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청바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이 서구식으로 근대화될 때 이곳 쿠라시키가 개항장 중 한 곳이었다는 사실도 모르던 내게, 이 두 가지 키워드는 쿠라시키라는 도시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한동안 오노미치 여행정보를 찾아보면서 오노미치가 청바지로 유명한 줄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 청바지가 일본에서 처음 생산된 곳은 쿠라시키, 더 정확히는 쿠라시키 남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코지마(児島)다. 그런 지역답게 쿠라시키 미관지구와 코지마 시내에는 데님 스트리트도 있다.
그런 고로 나는 일본 여행을 오기 전부터 여행 목표 중 하나로 이곳의 로컬 데님을 사는 걸로 정해 두었다. 다만 데님 스트리트에 있는 상점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평이 좋지가 않아서 숙소랑 가까운 곳 중 후기가 좋은 곳을 들렀다. 본사는 코지마에 있고 근래에 쿠라시키로 진출한 직영점이라는 사실로 인해 외지인이 보기에 조금이나마 신뢰가 가는 곳이었다. 2년 전쯤 잘못 세탁하는 바람에 옷이 줄어들어 입지 못하게 된 청바지를 떠올리며, 그때 버린 스타일의 생지 데님을 사야겠다, 하며 가게로 들어갔다. 다만 이곳 청바지의 가격은 2만 엔 안팎으로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꽤 높아서, 생지 데님이라곤 종류가 몇 되지 않아 마음에 드는 물건을 금방 찾았음에도 시착만 몇 번을 했다. 아무리 일본어로 소통이 된다 해도 옷의 길이, 구김, 모양, 관리법 등에 대해서 세세히 확인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은 그대로 가게를 나와 시간을 두고 좀 더 고민을 하다가, 문닫을 시간이 되기 전 다시 가게를 찾아 미리 보아두었던 청바지를 구입했다. 가게에서 수선까지도 직접 하고 있었는데 수선비는 따로 받지 않았다. 문을 닫는 시간은 오후 6시라고 안내돼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5시가 되면 손님을 받지 않고 남은 한 시간은 주문량을 수선하는 데 할애했다. 물건을 다시 찾으러 갔을 때는 옷을 고를 때까진 보이지 않던 보조 직원들이 두 명 더 있었다. 그 중 앳된 여직원이 수선을 마친 청바지를 가방에 담아 내게 깍듯하게 건네며 코지마 지역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 삼겹살 일본 여행을 와서 카이세키도 두 번이나 먹어보았지만,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쿠라시키에서의 마지막날 밤 한식당을 검색해 삼겹살집을 찾았다. 바꾸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길들여진 입맛이구나 하면서, 어쩌면 입맛이야말로 고정된 사고방식보다 바꾸기 어려운 걸지도 모르겠다면서. 식당에 미리 전화해보니 한 테이블이 비어 있는데 두 시간 안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고 했다. 이곳은 주로 현지인들이 찾는 식당으로 금요일 저녁 회식모임을 하는 사람들로 왁자했다. 쿠라시키에 도착한 이래로 사람이 붐비는 곳을 보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는 마침내 기대하던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는데, 이곳 사람들이 삼겹살을 즐기는 방식이라는 게 우리나라와 여간 다른 게 아니었다. 일단 화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방식이라 고기를 굽는 위치가 높았다. 화로를 내어올 때는 작은 그릇에 얼음 여덟아홉 개를 담아서 주는데 처음에는 이 얼음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우선은 삼겹살에 딸려 나오는 한국식 반찬 구성, 그러니까 김치며 깍두기며 쌈야채, 장(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물론 그마저도 김치며 깍두기는 따로 주문을 넣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여하간 또 하나 다른 점은 연기를 흡입하는 후드의 길이가 고정되어 있어서 연기를 빼내기가 불편하다는 점이었다. 그 와중 근처의 에어컨 냉방 때문이 매캐한 연기를 마파람으로 들이키면서도, 그저 맛있다고 저녁을 먹던 일은 지금은 웃음이 나오는 해프닝이 되었다.
앞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얼음 그릇의 쓰임새는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알 수 있었는데, 눈물을 적시며 식사하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직원 가운데 한 명이 숯의 화력이 지나치게 셀 때마다 얼음을 넣으라고 얼음 넣는 시늉을 한다. 하지만 얼음을 넣으면 불씨가 사그라든 자리에 어김없이 연기가 올라왔고, 숯의 화력이 사라져 다시 숯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렇다고 고기가 알맞게 익는 것도 아니어서 이쯤 되면 한국인으로서(?) 체면이 상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나중에 계산을 하려고 식당 통로를 가로지르며 다른 테이블을 본 바, 한국사람보다 고기를 더 잘 구우면서 화기애애 대화까지 나누는 이곳 사람들의 비결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했다. 그냥 철판 위에 고기를 적게 올려놓으면 될 일이었다. 철판에 많아야 고기는 네다섯 점이었다. 그에 비해 큼직한 뭉텅이로 고기를 올렸던 나는 화로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화력을 부추겼던 셈이었다. 우리나라의 숯불 문화에서 네 명이 앉은 테이블에 고기 몇 점을 올려놓고 몇번이고 위치를 뒤집어가며 삽겹살을 먹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고기를 아기자기 굽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소한 문화 차이를 느낀다. 이러나저러나 익숙한 맛을 접한다는 건 어디까비나 마음 누그러지는 일이어서, 쾌적하지 않은 식사에도 불구하고 흡족하게 식당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