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인/나쓰메 소세키>
"형님이 괴로워하는 건, 형님이 아무리 무얼 해봐도 그게 목적이 안될 뿐만 아니라 수단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불안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겁니다. 형님은 차분히 누워 있을 수 없으니까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일어나면, 그저 일어나 있을 수 없어 걷는다고 말합니다. 걸으면, 그저 걷고만 있을 수 없으니 달린다고 말합니다. 이미 달려나간 이상, 어디서도 멈출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멈출 수 없기만 하다면 괜찮겠는데, 시시각각 속력을 늘려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극단을 상상하면 두렵다고 말합니다. 식은땀이 날 만큼 두렵다고 말합니다. 너무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 없다고 말합니다."
"Keine Brücke führt von Mensch zu Mensch"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소설을 통해서였다. 이후, <마음>이라는 작품은 표지 일러스트가 멋스러운 신쵸문고(新潮文庫)의 문고판을 사서 읽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꼈던 먹먹한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인간 내면을 파헤치는 나쓰메 소세키의 예리한 시선은, 읽는 이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읽을 만한 책을 건지려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던 중, 딱 한 권 남아 있던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을 발견하고 오늘은 이거다! 하며 주저없이 계산대로 향했다.
올 초에 히가시노 케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었으니까 올해 들어 두 번째 일본소설인 셈인데,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를 알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일본 소설은 전혀 즐겨 읽지 않았다. 유력한 차기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곤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그래도 꽤 챙겨 읽었지만, 술술 읽히기는 해도 마음에 와닿는 게 없었다. 시계의 브랜드며 차종이 무엇이며 하는 것들이 도대체 이야기의 핵심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거니와, 따지고 보면 '허무주의'를 그저 허울좋게 포장해 놓은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역시 다분히 염세적인 느낌이 묻어나지만, 현대 일본 소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심연 아래에 정체를 숨기고 있던 인간 심리를 수면 위로 끄집어올린 뒤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되돌하보게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 방법이 적나라하냐 하면, 오히려 세심하고 꼼꼼하다. 다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근대 문명을, <마음>이 인간 존재를 다뤘다면, <행인>은 남녀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조금 더 옮겨온 느낌이다. <마음>의 경우 일본에서 오늘날까지도 많이 읽히는 책인만큼 해석 방식도 분분한데, 국가주의와 개인주의의 충돌이라는 측면(대표적으로 오에 겐자부로처럼)에서 텍스트에 접근하는 방식도 있다.
여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고 나서 한동안 이름 있는 일본 근대작가들의 책들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중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듯 인간에 대해 극단적으로 비관적인 시각을 드러내는데, 이 당시에 쓰인 소설들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대체로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20세기 초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현대문명의 파괴성에 회의감을 나타내는 예술사조가 커다란 흐름을 이뤘고,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 역시 그런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토록 열렬히 신뢰해 마지 않았던 현대문명이 우리에게 안겨준 것은 '행복'의 정반대에 놓인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는 '일제 치하'라는 더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같은 시기 저들이 늘어놓은 볼멘소리가 곧이 들리지만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쓰메 소세키의 글은 국적과 시대를 초월해서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