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은 강/엔도 슈사쿠(遠藤周作)>
"나는 힌두교도로서 본능적으로 모든 종교가 많건 적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종교는 똑같은 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어느 종교이건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 우리에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지점에 모이고 통하는 다양한 길이다.
똑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한, 우리가 제각기 상이한 길을 더듬어 간들 상관없지 않은가."
"내가 생각한 건...불교에서 말하는 선악불이(善惡不二)로, 인간이 하는 일에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거꾸로 어떤 악행에도 구원의 씨앗이 깃들어 있다.
무슨 일이건 선과 악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어서, 그걸 칼로 베어 내듯 나누어선 안 된다.
분별해선 안 된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결과가 신통치 않았던 시험이 끝나고 향한 곳은 광화문의 서점이었다. 시험준비 내내 딱딱한 텍스트에 맞부닥치느라 글이라면 이골이 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읽을거리가 필요했다. 그저 갈증을 해소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만화책이든 유아용 그림책이든 아무거나 손에 쥐고 읽고 싶었다. 그러다 결국 시선이 머문 곳은 문학전집이 진열된 곳이었고, 너무 두껍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도 않을 만한 녀석을 책의 제목으로 가늠해보았다. 그렇게 해서 손에 집힌 것이 <깊은 강>.
'신'이라는 소재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일본인의 시각에서 신은 또 다른 방식으로 풀이될 것 같았다. 작가는 일본에서는 흔치 않게 가톨릭 배경을 지닌 인물인데, 글에 나타난 작가의 종교에 대한 관점은 오히려 범신론적이다. 기독교에 호의적이지 않은 일본의 종교적 풍토 속에서, 기독교라는 것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리고 종교라는 것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궁극의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작가의 고뇌가 절절히 묻어나는데, 이는 '오쓰'라는 한 신부의 고행을 통해 묘사된다.
이 소설은 서로 다른 상처를 지닌 4명의 주인공들이 어떠한 깨달음을 찾아 인도 바라나시로 향한다는 면에서, 비슷한 전개를 지닌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현실 속에서는 채우고 싶어도 채울 수 없었던 공허함, 회의감, 육체적 소진, 또는 정신적 소진을 메우기 위해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인도 여행길에 오른다. 주인공들이 각자 소망을 성취하는 방식은 비록 완전무결한 모양새를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찾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그들 내면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앙금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실마리를 얻어간다. 현실 속에 완전한 것은 없다. 다만 해결의 실마리를 추적하는 여정이 곧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작가는 작품 속 몇몇 대상을 '피에로'라 칭하는데, '오쓰'는 그 중 하나에 해당한다. 몸소 모든 믿음의 평등함을 실천한 '오쓰'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단자, 기인, 이방인으로 비춰진다. 종교가 하나의 도그마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오쓰가 추구하는 가치는 너무나 연약하고 쉽게 외면된다. 각자의 '종교적 진리'로 무장하여 서로에 대한 무력 공격을 서슴지 않는 오늘날, 종교가 태초에 지향했던 진리는 유명무실해졌다. 소설의 어느 한 글귀에서처럼 사람은 사랑보다도 증오에 의해 맺어지는 걸까.
이러한 비극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의외로 간단한 것 같다.
소설 속 인도인들이 즐겨쓰는 말: 노——프라블럼!!(No, Probl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