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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마치 나를 최종적으로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무너뜨리려는 듯 삐뚤어짐이라는 기운이 찾아왔다. 이 기운에 대해 철학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내 영혼이 살아 있음을 확신하는 것만큼이나 삐뚤어짐이 인간 마음의 원초적인 충동 가운데 하나임을―인간 성격의 향방을 결정하는 불가분의 본원적 기능이나 감정 가운데 하나임을―확신한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쁜 짓이나 어리석은 짓을 수차례 저질러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오로지 법이 법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없이 훌륭한 판단마저 무시하고 법이란 것을 어기려는 성향을 항상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먼 이런 삐뚤어진 기운이 나를 최종적으로 무너뜨리고야 말았다. ...... 영혼이 스스로를 괴롭히려는, 즉 영혼이 그 자신의 본성에 폭력을 가하려는―오로지 악행을 위한 악행을 저지르고픈―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이런 갈망이었다.
―애드거 앨런 포우 〈검은 고양이〉
배달 불능 편지라니! 죽은 사람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천성적으로 혹은 불운에 의해 창백한 절망에 빠지기 쉬운 사람을 생각해보라. 그런 사람이 계속해서 이 배달 불능 편지를 다루면서 그것들을 분류해서 태우는 것보다 그 창백한 절망을 깊게 하는 데 더 안성맞춤인 일이 있을까? 그 편지들은 매년 대량으로 소각되었다. 때때로 창백한 직원은 접힌 편지지 속에서 반지를 꺼내는데, 반지의 임자가 되어야 했을 그 손가락은 어쩌면 무덤 속에서 썩고 있을 것이다. 또한 자선헌금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보낸 지폐 한장을 꺼내지만 그 돈이 구제할 사람은 이제 먹을 수도 배고픔을 느낄 수도 없다. 그리고 뒤늦게 용서를 꺼내지만 그것을 받을 사람은 절망하면서 죽었고, 희망을 꺼내지만 그것을 받을 사람은 희망을 품지 못하고 죽었으며, 희소식을 꺼내지만 그것을 받은 사람은 구제되지 못한 재난에 질식당해 죽어버린 것이다.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자연은 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또한 자연이 그를 처치한다고 해서 우주를 망쳐 놓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생각이 어떤 사람에게 떠오를 때, 그는 처음에는 자연의 신전에 벽돌을 던지고 싶어질 것이고 그 다음에는 벽돌도 신전도 없다는 사실이 몹시 가증스러워질 것이다. 자연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무엇이든 그는 틀림없이 조소를 퍼부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손에 잡히는 야유할 만한 것이 없다면 그는 자연의 여신을 직접 만나서 한쪽 무릎까지 머리를 숙이고 두 손으로 빌면서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합니다'하고 말하며 실컷 탄원하고 싶은 욕망을 느낄 법하다.
―스티븐 크레인 〈소형 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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