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젓가락 / Q. 에드워드 왕 / 따비>
대젓가락이 바삐 움직이네,
쓰든 달든 늘 먼저 맛을 보네.
비록 자기는 아무것도 먹지 않지만,
분주히 오가며 시중드는 것을 좋아하네.
-정량규(程良規)
'날 것(生)'과 '익힌 것(熟)'은 고대 중국에서 그들이 알고 있는 세계의 문명 발달에 대한 서로 다른 차원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된 두 개의 개념, 일종의 기표였다. 다시 말해, 중국인이 믿었던 것처럼 자신과 같은 문명사회는 대개 그들 문화권의 변방에 있었던 야만 또는 '날 것'인 사회들과 비교할 때 '익힌 것'이었다.
구운 음식은 자연의 편에 놓일 수 있고, 끓인 음식은 문화의 편에 놓일 수 있다. 음식을 끓이는 것은 문화의 산물인 그릇의 사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굽는 것과 끓이는 것은 모두 불을 사용하지만, 전자는 음식을 불에 직접 노출하는 반면, 후자는 문화적 중개를 통해 작용한다. 중국인도 마찬가지로 음식을 집어 먹을 때 식사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문화적 표시, 또는 교양인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젓가락은 서양의 나이프(그리고 그것의 포악한 대용물인 포크)와 완전히 다르다. 젓가락은 음식을 베거나 찌르거나 난도질하거나 잘라내는 것(이것은 모두 요리를 위한 재료 준비로 격하된 매우 제한된 행동들이다. 팔기 위해 살아 있는 장어의 껍질을 벗겨내는 생선 장수는 그것을 일종의 제물을 바치기 위한 행위지 살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을 거부하는 식사도구다. 젓가락으로 먹는 음식은 이제 더 이상 폭력을 가해서 얻은 먹이(서로 얻기 위해 다투는 살덩어리, 고기)가 아니라, 조화롭게 이동된 물질이다. 젓가락은 이전에 새 모이와 밥으로 뚜렷이 구분되던 물질을 한 줄기 젖으로 바꾸었다. 젓가락은 지치지 않고 어머니가 밥을 한입 떠먹이는 것 같은 몸짓을 하는 반면, 창과 칼로 무장한 서양의 식사 방식에는 포식자의 몸짓이 여전히 남아 있다.
대략 중국>일본>한국>베트남 순으로 각각의 젓가락 문화에 대한 분량이 많이 다뤄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젓가락 문화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서 봤는데,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1. 숟가락 문화
숟가락은 원래 기장으로 죽을 쒀 먹던 고대 중국(황하 이북 지역)에서 고안된 식기였다. 이후 양쯔깡 유역의 찰진 쌀밥 문화가 전래되면서, 북중국에서도 젓가락만 사용하는 문화가 정착된 반면, 공교롭게도 한반도에는 숟가락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여전히 숟가락의 쓰임새가 있는 국―국에 밥을 말아먹기도 한다―을 젓가락 문화권에서 가장 즐겨먹는다. 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야기이지만, 한국인들은 숟가락을 사용하기 때문에 식사할 때 그릇을 들 필요가 없다. 이에 비해 젓가락만 사용하는 문화가 확실하게 자리잡은 중국과 일본사람들은 불가피하게 그릇을 들어올려 먹어야 하는 불편함―반대 관점에서 한국인은 고개를 숙여 식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2. 쇠젓가락
한국의 젓가락 문화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은 재료다. 숟가락을 병용한다는 점, 젓가락을 쇠로 만든다는 점만 봐도 (비록 중국와 일본의 사료(史料)가 많이 다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젓가락 문화를 공유하는 네 나라 가운데 단연 한국의 젓가락 문화가 가장 특이하다고 느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대나무가 흔하고, 또 가벼운 대나무의 특성 때문에 대젓가락이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오늘날에도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는 기후상 대나무가 중국이나 일본만큼 흔하지는 않다. 오히려 한반도에서 대접을 받던 젓가락은 은젓가락이었다.
중국과 일본은 대젓가락을 이용하던 평민들의 문화가 귀족들에게 흡수되었다면, 한국의 경우 오히려 반대의 경향이 강했다. 궁중에서 은젓가락이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점차로 은을 비롯해 철로 만들어진 숟가락과 젓가락이 일반인들에게 전파된 것이다. 오늘날 대중 식당에 가도 중국과 일본의 경우 나무젓가락이 놓여 있지만, 한국의 대중 식당에서는 쇠젓가락이 훨씬 많다. 당장 내 경우만 생각해도, (환경호르몬 문제 때문이기는 하지만) 배달음식을 시켰을 때 공짜로 나무젓가락이 배달되어도 좀처럼 나무젓가락을 쓰지 않는다.
젓가락 하나에 이렇게 다채로운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물론 오늘날은 서양의 물질문명이 깊숙히 침투한 만큼, 포크와 나이프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대표적인 구조주의 철학자였던 바르트와 레비스트로스가 말했듯, 식기의 사용이 하나의 기표이자 문화적 상징(또는 정신세계)을 의미한다면, 젓가락을 포기하고 포크를 사용하는 단순한 행동에서조차 우리의 사고방식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생활양식에서 거대한 문화적 흐름을 읽어낼 수 있었던 유익한 책이었다.
'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스완네 집 쪽으로 I (0) 2017.08.20 레스토랑에서-맛, 공간, 사람 (0) 2017.08.11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0) 2017.07.17 필경사 바틀비 (0) 2017.06.25 소설 (0) 2017.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