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킬과 하이드의 새로운 해석일상/film 2017. 11. 26. 21:28
<미세스 하이드/세르주 보종/드라마/지킬·하이드(이자벨 위페르), 말릭(호세 가르시아), 교장(로망 뒤리스)/95>
GÉQUIL ET HYDE
개인적으로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하는 영화는 믿고 보는 편이다. 이번 영화도 그런 경우인데, 미세스 하이드라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아 기대가 되었다. 실제로 영화는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 앤 하이드>에서 모티브를 빌려오고 있다. 학교에서 무능한 교사로 낙인 찍힌 하이드는 어느날 자신의 연구소에서 실험을 하던 중 감전되고, 이후 달이 뜨는 밤마다 불의 화신으로 변신한다.
#1. INÉGALITÉ
알려져 있다시피 원작에서 '지킬'과 '하이드'는 서로 극명하게 대척관계에 놓인 캐릭터들―더 정확히는 한 명의 캐릭터가 두 개의 역할을 맡는다―이다. 그렇다면 <미세스 하이드>에서 이런 캐릭터를 차용함으로써 말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나는 크게 세 가지를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소제목을 불평등(inégalité)으로 달아보았다)
첫째,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구도가 '능력-무능력'이다. 하이드는 교장, 학생, 심지어 교생에게까지도 찬밥 신세인 교사이다. 그러나 연구소에서의 사고 이후, 그녀는 점점 교사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녀의 교수방식이나 연구능력에 대단한 발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차이라면 빨간 블라우스를 입었다는 것, 수업에 팀 프로젝트를 도입했다는 것 정도. 이것들마저 그녀가 뚜렷한 의도를 갖고 추진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교사로서 인정을 받아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극명한 대비를 통해 하이드라는 인물이 '무능한 교사'에서 '유능한 교사'로 거듭나는 스토리를 보여주지만, 인물의 성격 자체에는 별 변화를 주지 않음으로써, 무능함과 유능함의 차이에 대해 생각케 한다.
둘째, '남성-여성'의 젠더가 뒤바뀐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에서 하이드는 교사생활을 통해 생활비를 벌고, 그녀의 남편이 가정주부로 묘사된다. 하이드가 사고 이후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일 수록, 남편은 어쩔 줄 몰라 쩔쩔 매기만 한다. 이 부부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는 것은 하이드다. 영화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 전통적인 젠더 관념을 뒤흔들고자 한 것 같다. 교장(로망 뒤리스)이 하이드의 남편에게 건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나도 밖에서 일을 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아요.'
셋째, '절대적 평등-상대적 평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절대적 평등은 말 그대로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평등 개념인 반면, 상대적 평등이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원칙에 입각한 평등 개념이다. 영화에는 '말릭'이라는, 선천적으로 신체적 장애를 지닌 학생이 등장한다. 하이드는 가급적 말릭에게 교육의 기회를 더 주려고 노력하고, 동네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는 도움을 주기도 한다. 어떤 학생들은 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말릭은 너희들과 다른 만큼, 다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
#2. INTELLIGENCE
우리의 지성(Intelligence)은 어떻게 함양될 수 있는가. 영화의 종반부에서 하이드가 '사람의 키'에 비유하며 학생들에게 열변을 토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이 있다고 할 때에, 환경적 요인이 20%, 유전적 요인이 80%의 변수로 작용한다고 해서 키의 20cm가 환경에 의해, 나머지 80cm는 유전에 의해 정해진다고 말할 수 없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 화학적 변화는 물리적 변화와 다르며, 결과값을 확률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무 자르듯 결과값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소속되었던 학교는 인문계열과 실업계열이 나뉘어 있었고, 그녀가 맡았던 실업계열의 학생들은 문제투성이의 아이들이었다. 환경이 불우하거나 같은 학급의 친구들이라고 해도 학습의욕이 없었기 때문에, 배움에 대한 열정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런 학생들에게 그녀는 팀 과제를 부여하는가 하면, 수학 공식을 가르치는 대신 공식이 나오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한다. 진정한 배움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릴 때 <지킬 앤 하이드>라는 만화책을 몇 번이고 즐겨 읽었었는데, 이 작품을 영화에서 만나니 마치 잊고 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 듯한 기분이었다. 글로 감상을 정리하다보니 영화가 숨겨놓은 은유가 굉장히 많았던 것 같다. (막상 영화가 딱 끝났을 때에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아서 왓챠에도 보통 점수를 매겼었다) 또한 프랑스 영화 특유의 당돌함(?)을 느낄 수 있어 그 나름의 유쾌함도 있었던 것 같다.
'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날, 어떤 퍼즐조각들 (0) 2017.12.01 두 개의 욕망 (2) 2017.11.30 진부(陳腐)함과 참신(斬新)함의 사이 (0) 2017.11.13 가리봉동 소탕작전 (0) 2017.11.03 상애상친(相爱相亲) (0) 2017.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