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부(陳腐)함과 참신(斬新)함의 사이일상/film 2017. 11. 13. 00:03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로맨스/츠키카와 쇼月川翔/사쿠라(하마베 미나미浜辺美波), 나/시가(키타무라 타쿠미北村匠海)/115>
生きるってのはね。きっと誰かと心を通わせること。
拝啓
志賀春樹くん。ようやくこれを見つけましたね。遅い遅い!
春樹。春樹って呼んでいい? 前からそう呼びたかったんだ。
短い間だったけど、そばにいてくれて嬉しかったよ。ありがとう。
病院で真実と挑戦ゲームをやったあの時、何を聞こうとしたか教えてあげる。
それはね、どうして私の名前を呼んでくれないのってこと。
だって春樹、私の名前を1回も呼ばなかったでしょう。
最初からずっと、君、君、君。ひどいよ。
でもね、病院に忍び込んでくれた時気付いたんだ。
いずれ失うってわかってる私を友達や恋人、君の中の特別な誰かにしたくないんだって。
でも、私、そんな春樹に憧れてた!
誰とも関わらないで、たった一人で生きている。
強い春樹に。
私は弱いから友達や家族を悲しみに巻き込んじゃう。
でもね、春樹はいつだって自分自身だった。春樹は本当にすごいよ。
だからその勇気をみんなにも分けてあげてください。
そして誰かを好きになって、手を繋いで、ハグをして、鬱陶しくても、まどろっこしくても、たっくさんの人の心を通わせて。
私の分まで生きて!
私ね、春樹になりたい。
春樹の中で生き続けたい。
ううん。そんなありふれた言葉じゃだめだよね、そうだね。
君は嫌がるかもしれないけど、やっぱり私は..
君の膵臓を食べたい!
부산영화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영화. 기억이 맞다면 당시 일본영화로는 유일하게 이 영화가 수상을 했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제목 때문에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데, 조금은 과한 영화제목 때문에 제목이 기괴한 영화 치고 내용이 내실이 있긴 할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느 글에선가 이 영화가 <러브레터>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잇는 일본 로맨스 영화라고 소개했던데, 결과적으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이전의 일본 로맨스와 비교해 진부하기도 하고 참신하기도 했던 모호한 영화였다.
陳腐
영화를 보면서 불현듯 떠올랐던 것이 다케우치 유코竹内結子와 카토리 싱고香取慎吾가 출연했던 <장미 없는 꽃집>이라는 일본드라마였다. 딱한 사연을 지닌 여주인공과 곁에서 여주인공을 말없이 지지해주는 남주인공의 모습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스테리한 긴장감이 마지막화에서 봇물터지듯 폭발하는 <장미 없는 꽃집>과 달리,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이야기 설정은 제목만큼이나 꽤 작위적이다. 췌장에 병이 생겨 1년 남짓의 유예 인생을 살고 있는 여학생과 평범한 남학생이 조우하는 스토리. 결말은 거의 정해져 있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재미의 요소는 결국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찾아나가게 된다.
그런데 그 스토리마저도 대부분 여주인공 사쿠라의 버킷리스트를 채우는 플롯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와 '사쿠라'의 관계 또한 연인 또는 베프도 아닌 '사이 좋음(仲良し)'이라는 조금은 막연한 틀 안에서 남녀의 애정보다는 살아 있음의 소중함에 대해 풀어나간다. 때문에 영화는 가슴 아리게 하는 옛사랑을 떠올리는 한 남자의 로맨스이기도 하지만,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그것이 '관계(마음을 통하게 하다心を通わせる)'라는 답을 내리는 데에 방점을 두고 있는 한 편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영화를 즐겨 보는데, 이렇게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맞물리는 경우, 게다가 굳이 췌장이라는 소재가 활용되는 경우, 아무리 좋은 대사가 곳곳에 놓여 있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 멋진 대사들을 온전하게 느끼기 어렵다=_=
斬新
그럼에도 기존의 일본 로맨스 영화와 달리, 이 영화가 꾀하고 있는 참신한 점은 바로 그 '철학적 질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현재의 '나'가 회상하는 과거의 줄거리는 큰 감흥 없이 봤고, 현재의 '나'가 지난날 사쿠라가 쿄코에게 남긴 유서를 발견한 장면 이후부터 흥미롭게 봤다. 그러니까 액자 속 이야기(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보다는 액자 이야기(현재 어른들의 이야기)에 더 시선이 집중되었다.
특히 지난날의 '사쿠라'가 '나'에게 남겼던 유서―위에 원문을 남겨놓았다―를 오늘날의 '나'가 읽어내려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는데,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늘 주위에 흔들리지 않은 채 스스로 완결된 삶을 살고 있는 너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참 모순적인 말이다. 지난날의 사쿠라는 '나'에게 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야 말로 삶의 증거라고 말해왔는데 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분통이 터지든 사랑에 빠지든 그러한 감정의 뒤섞임이야말로, 그런 뒤섞임에서 오는 혼란과 고통이야 말로 삶의 증거라고 말했던 사쿠라가 아니었는가.
그리고는 유서에서 사쿠라는 뒤이어 말한다. 그런 흔들림 없이 가장 자기자신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전달해 달라고. 전혀 반대의 맥락인 듯하면서도, 일맥상통하는 결론이다. 글을 쓰다보니 이 영화는 로맨스라기보다는 철학 드라마에 가까운 것 같다. 매순간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마도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결론을 내리며, 조금은 성급하게 글을 매듭짓는다.
'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개의 욕망 (2) 2017.11.30 지킬과 하이드의 새로운 해석 (0) 2017.11.26 가리봉동 소탕작전 (0) 2017.11.03 상애상친(相爱相亲) (0) 2017.10.28 국경 3부작, 그 마지막 편 (0) 2017.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