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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3부작, 그 마지막 편일상/film 2017. 10. 14. 00:17
<윈드 리버/서스펜스/테일러 쉐리던/코리(제레미 레너), 제인 베너(엘리자베스 올슨)/111>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본 탓인가, 뭔가 아쉽고 찝찝했던 영화. <윈드 리버>는 스크린이 내리기 전에 봐야겠다고 몇 주 전부터 벼르고 있던 영화였다. 영화의 연출가이자 각본가인 테일러 쉐리던이 이전에 각본을 맡았던 내로라하는 작품들―<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 <로스트 인 더스트>―때문에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이다보니 과장된 서스펜션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영화로 완벽히 구현된 것 같지 않다..
테일러 쉐리던의 '국경 3부작'의 종지부를 찍는 <윈드 리버>는, 미국-멕시코간 접경도시 후아레즈(Juarez)를 배경으로 하는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나 텍사스(Texas)를 배경으로 하는 <로스트 인 더스트>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와이오밍의 외딴 원주민 보호구역을 배경으로 하는 <윈드 리버>가 보여주는 풍경은 어두운 상영관에서도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설원(雪原)이다. 이 척박한 땅에 인디언들이 모여살고 있으며, 눈을 거처 삼아 살아가는 동물들이 있다. 이러한 특수한 환경은 스노모빌이나 퓨마처럼 생소한 소재를 영화에 담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때문에 주인공 '코리'가 거듭 되풀이하는 말도 그러한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극한의 환경여건 속에서)살아남는 자가 강자다", "이곳에서는 자연이 사람을 집어삼킨다" 등등. 사실 이러한 상황은 좀 아이러니하다. 일단 와이오밍주의 특성을 살피자면, 로키산맥의 동쪽에 위치한 내륙주로 완전한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달리 말해 서부개척 당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영토 확장이 이루어진 지역이고, 편의에 따라 주의 경계를 설정한 대표적인 주가 와이오밍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그 중에서도 이주해온 백인)에 의해 손쉽게 선그어진 이 땅을 인간이 통제하지를 못한다. 기존에 이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보호구역 내에서 자급자족하지 못한 채 쇠락해간다. 원주민들의 젊은 후손들은 약에 빠지거나 범죄에 연루되어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다. 치안은 허술하지만 인구가 희박한 이 지역을 관리하는 보안관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당장 와이오밍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담당하기 위해 파견된 FBI(미연방수사국) 소속직원부터가 네바다의 라스 베가스에서 파견된 인물 '제인 베너'다.
전작인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의 키워드를 '권력 부패'로, <로스트 인 더스트>의 키워드를 '빈곤'으로 꼽는다면, <윈드 리버>의 키워드는 '극한의 (자연)환경'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극한 환경'이라는 키워드만으로 풀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거꾸로 말해 <윈드 리버>에는 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심리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듯 싶다. 고립된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에 유흥을 즐기지 못하고, 때문에 범죄나 마약에 접근하게 된다는 메시지는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반박하는 데 제한이 있지만) 좀 비약인 것 같다. 간단히 말해 전적으로 외부동기에 의해 악을 행했을 뿐 개인의 내부동기는 피동적 위치에 있었다는 합리화로밖에는 안 들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살인의 주동자가 설원에서 쓸쓸히 도망칠 때 그다지 통쾌하지도 연민이 들지도 않는 것은 개인에 대한 해석이 피상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서 영화의 말미에 인디언 여성들의 실종현황을 알리는 자막이 나올 때에는,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이었던가 하는 붕뜬 상태가 되어버린다. 설원에서 벌어진 비극을 담으려던 건지, 백인들이 몰아낸 원주민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말하려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이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주정부/연방정부의 무능함을 말하려는 건지... 이 모든 것을 다 담고자 했다면 좀 더 매끄럽게 이야기를 엮었어야 된 것이 아닌지 아쉽다.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기보다 단선적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데 그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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