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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애상친(相爱相亲)일상/film 2017. 10. 28. 00:17
<상애상친/드라마/실비아 창/후이양(실비아 창), 샤오핑(톈좡좡)/120>
부산국제영화제에 간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었던 터라, 어떤 작품을 보든 상관이 없었고 그저 유일하게 관람할 수 있는 시간대의 작품을 골랐다. 영화 상영시각은 저녁 8시였는데, 폐막식은 대략 저녁 여섯 시 반부터 시작되었다. 초청작의 감독과 스탭, 배우들이 레드카펫을 걷고 수상을 마친 뒤에 비로소 영화 상영~
마지막으로 본 중화권 영화가 <중경삼림>이었던가...<중경삼림>은 재밌게 봤지만, 중화권 영화에 대한 기대가 그리 크지는 않았던지라 아무 생각없이 봤다. 수영강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추워져서 옷을 여며가며 영화를 봤던 기억이..=_= 아니나 다를까 대륙 특유의 난리법석과 알 수 없는 유쾌한 분위기가 영화에 넘쳐났다. 중원의 대도시 시안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급격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니며 살아가는 3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세대격차 속에 세 명의 여성을 위치시킴으로써 여성이 중국사회에서 겪는 불합리에 대해 증언하기도 한다. '법(法)'보다 '의(義)'를 중시하는 할머니(1대)와 독립적이고 개방적인 웨이웨이(3대)는 가장 대비되는 인물들이다.
영화에서 가장 감명깊었던 장면은 웨이웨이의 남자친구(다다)가 스스로 빈 관에 들어가 흐느끼는 장면이다. 다다는 가수의 꿈을 품고 베이징으로 상경하던 중, 자신의 노래를 좋아해주는 웨이웨이를 만나 시안에 눌러앉게 된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다다는 꿈이 점점 멀어져간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설움이 북받쳐 다다는 눈앞의 빈관에 몸을 넣고 눈을 감는다. 마치 자신의 꿈을 저 멀리 심연으로 흘려보내듯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감명깊었던 장면은 샤오핑(후이양의 남편)이 새 차를 뽑은 기념으로 아내 후이양을 데리고 드라이브를 할 때, 뒷좌석에서 촬영한 부부의 다정한 뒷모습이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젊은 날 한때 둘이 즐겨들었던 팝송을 들으며 서로를 지지해주는 모습을 보면 절로 마음이 흐뭇해진다.
사실 처음에 볼 때는 유치한 영화라 생각했지만, 다다가 관에 들어간 장면에서부터 쭉 몰입을 하며 봤던 것 같다. 여름에 다녀왔던 간쑤성을 떠올리며, 그때 다녀오지 못한 시안이 다시 눈에 밟혔다.
영화를 보러 갈 때에는 폐막식까지 염두에 두고 간 건 아니었는데, 안내된 시각에 미리 가서야 폐막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근래 몇 년간 거듭 파행을 겪어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수상소감에서도 정치적인 발언들이 쏟아졌다. 영화제를 되살리겠다고 다짐하는 소감들도 많았다. 그런 것들을 보면 과연 고충이 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 5대 영화제라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지만, 그러한 수치와 상관없이 우리나라에 이만한 규모로 예술이 교류되는 이벤트가 있다는 게 좋다.
예술은 꼭 1등을 해야 값진 것이 아니다. 또한 예술은 '참거짓'을 가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지금처럼 가치관이 다양한 시대에 어느 누군가의 마음에 1등이면 예술작품은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동굴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이래로 변치 않는 것은, 내가 가진 생각과 상상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 때에 예술이 예술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예술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진 시기지만, 예술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 또한 쉬워진 시대다. 각종 이미지와 채널이 범람하는 시대에 나 또한 예술이 지닌 가치를 가벼이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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