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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4 / 라쿠츄(洛中) : 비를 머금은 카모가와(鴨川)의 아침여행/2018 일본 교토 2019. 3. 12. 00:08
계획대로였다면 나라의 도다이지에 있었어야 할 이날 아침
작은 공방을 겸한 카페, efish
카페의 창가석에서 바라본 카모가와 강변의 풍경
아침에 눈을 떠보니 집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여행을 갔던 기간은 원래 4일 모두 비 예보가 있었다가 그 주에는 흐리고 갬으로 예보가 바뀌어 있었다. 그랬던 겨울비가 여행 마지막날 기어이 내리고야 말았다. 집안에 꼼짝 못할 정도로 폭우가 내린 건 아니었지만, 이른바 사슴공원으로도 불리우는 나라의 도다이지에 갈 생각은 일찍 접었다.
사실 나야 도다이지에 가봐서 그 풍경을 알지만, 부모님께는 사슴이 분방하게 돌아다니는 문화유적지를 구경시켜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어쨌든 3박 4일의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마지막날이 되고 보니 여로(旅勞)가 몰려오기도 했고, 비싸게 지불한 숙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어서 최대한 느긋하게 아침시간을 보냈다. 그렇기는 해도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비행편이 늦은 오후에 있었기 때문에 마냥 뭉그적거릴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기껏해야 중랑천만한 폭의 카모가와 강
겨울 이슬이 내린 잔록(殘綠)들
efish의 감각적인 소품들
이번 여행에서 의욕에 가득 차서 도전했던 것이 바로 맛집 아니겠는가. 슈루룩 구글링을 해서 괜찮은 식당을 검색해 두고 아침나절을 보낼 만한 카페를 찾아 놓았다. 숨은 보석처럼 여행책자에는 소개되지 않은 장소를 찾는 재미가 있는 법인데, 카페의 경우 챙겨간 여행책자를 최대한 참고했다. 고죠 역 인근에 내려서 원래 가려던 곳은 murmur coffee라는 곳이었는데, 공교롭게다 당일 문을 닫아서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 기요미즈고죠 역까지 다다른 이후에야 efish라는 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인에게도 꽤 알려져 있는 듯한 카페로, 아침식사를 만들기도 하고 커피를 만들기도 하는 곳이었다. 딱 브런치를 먹을 만한 시간대였지만 음식을 주문해 먹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대체로 음료만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부모님과 나는 하나 남은 창가석에 자리를 잡고 주문한 커피를 마시며 강변을 바라보았다. '카와(강)'이라고는 해도 폭이 넓지 않기 때문에 대단한 경치를 선사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멀리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사람이 보였고, 공중의 가장 높은 곳에서는 매 두 마리가 빙빙 맴돌며 먹잇감을 물색하는 모양새였다. 나도 철창 밖에 있는 매는 처음 봐서 내 눈을 의심했지만, 도심 속 하천 위를 날고 있는 저 생물체는 매가 분명했다.
미로 같은 골목을 빠져나와
도달한 곳은 요즘 힙한 곳으로 주목받는다는 Lorimer Kyoto
신선한 점심식사 #1
신선한 점심식사 #3
신선한 점심식사 #3
11시 반경 미리 검색해둔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는 데 시간히 상당히 걸렸기 때문에 실제 식사를 한 것은 12시 정각이 다 되어서였다. 이곳, Lorimer Kyoto 역시 고조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브루클린 출신의 셰프―늘 따라붙는 수식어였는데 사실 브루클린 출신 셰프면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가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아침과 점심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그렇다. 이곳은 아침에 문을 열어 점심 장사가 끝나면 문을 닫는 그런 식당이었다.
이 식당을 선택한 것은 첫째, 좋은 재료를 쓰는 점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고, 둘째, 백반과 비슷한 양식으로 음식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더하자면 서양인들이 으레 동양에 대해 갖는 환상이 그러하듯 이 식당의 주인 역시 최대한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는 듯했다. 요컨대 음식이 너무 과하지 않은 점도 이 식당을 선택하는 데 결정요소가 되었다.
바 형태의 자리도 있어서 식사를 하는 동안 셰프와 대화를 할 수 있는데, 이미 우리가 갔을 때 바에 있는 자리는 다른 일행이 앉아 있었다. 혼자 여행을 왔었다면 또 모를까, 바가 비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냥 테이블에 앉았을 테지만. 총 세 가지의 생선 요리가 제공되는데, 서로 다른 생선을 주문에서 나눠 먹기로 했다. 도미와 고등어까지 나왔던 건 정확히 기억을 하는데 나머지 한 종류가 연어였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배가 너무 부르지 않을 만큼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그리 멀지 않은 교토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히가시 혼간지 앞
외벽의 색깔이 인상적이었던 상점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풍경
쾌속 열차인 하루카를 타더라도 간사이 공항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이제는 교토역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에 숙소를 떠나면서 모든 짐을 교토역 라커함에 보관을 해두었기 때문에 라커함에서 짐을 꺼내는 것도 잊지 않고!! 하나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현금을 좋아하는 일본에서 잔돈(동전)이 없고 보니 라커함에서 사물을 회수할 방법이 없었다.
으리으리한 교토역에 편의점은 또 왜 보이지 않던지.. 있는 편의점도 문을 닫은 상태였다. 현금을 교환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인포메이션 데스크에도 가보았지만 아무런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처음으로 영어를 쓰는 일본인을 만났는데, 영어를 잘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은 작은 기념품샵에 가서 가장 저렴한 기념품을 산 뒤 거스름돈을 갖고 라커함을 열었다.
티켓을 구하는 일도 수월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교토로 올 때 편도권만 끊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되돌아가는 편도권을 다시 끊어야 했는데 도통 창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예매를 했을 때보다 예매하지 않았을 때 표 가격이 훨씬 뛰는 걸 보고 조금만 더 미리 준비를 할 걸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왕좌왕한다 해서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우리는 여행의 감흥은 잠시 뒤로 미루어둔 채 발차 준비중인 하루카에 올라탔다.
교토역으로 접어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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