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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 / 피르스트로부터(First, Grindelwald)여행/2019 스위스 종단여행 2019. 9. 14. 23:07
우리가 묵은 숙소의 경우 피르스트로의 접근성이 최고였음은 두 말할 게 없다. 리셉션의 직원은 숙소 일대의 트레킹코스를 추천해주면서, 피르스트와 함께 발트슈피츠(Waldspitz)의 숲길을 함께 권해 주었다. 우리는 숙소에 짐을 푼 뒤, 채 20분이 안 되는 시간 안에 피르스트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절기 피르스트 정상에서 그린델발트로 내려가는 마지막 곤돌라 시각이 6시 반에 있다는 것부터 확인하고!!
우리가 머물렀던 스위스 대부분의 지역은 완벽히 독일 문화권이었다고 무방할 것 같다. 스위스에 오기 전까지 독일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섞어 쓰는 문화란 어떤 문화일까 궁금증이 많았는데, 도가니(meltingpot)처럼 완벽히 혼종적인 문화라기보다 샐러드보울(Saladbowl)처럼 권역에 따라 문화가 비교적 뚜렷이 나뉜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65%에 달하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20%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므로—때문에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매우 소수라 할 수 있다—취리히에서부터 바젤, 베른, 루체른, 생모리츠, 체르마트에 달하는 광범위한 지역이 독일어권에 속하고 이 지역 대부분의 산악지명부터가 독일어로 명명되어 있다.
프랑스 문화를 띠는 지역이라면 레만 호를 에워싼 지역, 그러니까 시계방향으로 제네바(Genève)부터 브베(Vevey), 몽트뢰(Montreux)로 대표되는 지역을 들 수 있다. 한편 이탈리아 문화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지역은 루가노(Lugano)를 비롯한 이탈리아 접경지역을 들 수 있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같은 이탈리아 접경지역이라 하더라도 체르마트와 생모리츠 지역은 독일 문화권에 가깝다. 스위스가 경상도와 강원도를 합친 면적도 채 안 된다고는 하나, 크고 작은 호수와 높고 낮은 산줄기—스위스에는 알프스 산맥말고 쥐라(Jura) 산맥이라는 작은 산맥이 또한 펼쳐져 있다—로 인해 지역간 이동이 쉽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문화권을 꼭 가보고 싶었음에도 제네바나 몽트뢰를 들르지 못한 까닭이다.
본격적인 여행기에 앞서 이야기가 각설로 자꾸 새는데, 라틴 문화—프랑스 문화 또는 이탈리아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스위스의 목가적인 풍경은 좀처럼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숲속에서 갓 뛰쳐나온 듯한 금발의 남녀, 투박하지만 수수하고 단아한 복장의 사람들, 귀족적인 문화보다는 근면성실한 문화가 더 어울리는 이 지역은 딱 게르만 문화와 만났을 때에라야 자신의 색깔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만일 독일어를 쓰는 이 사람들이 오스트리아 사람들처럼 프로이센이 이룩한 통일독일에 동질감을 느꼈다면, 그래서 중립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는 대신 나치에 동조했다면, 그러한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사실 스위스가 세간에 청정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천혜(天惠)의 자연경관의 역할이 크지만, 외교적으로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는 자주적인 국가 이미지도 적잖은 역할을 할 것이다. 자주 영화의 소재가 되듯 스위스는 검은 돈들이 수없이 흘러들 뿐 아니라, 세계 의약산업을 쥐락펴락 하는 제약업체가 포진해 있고, 더불어 빈부격차도 꽤나 심각한 국가지만 말이다.
여하간 이 모든 사실들을 차치하고 이 당시 나는 상당히 저기압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스위스로 넘어온 뒤에도 한국에 전화를 걸어가며 카드를 분실/해지 하는 일이며, 시차로 인해 풀리지 않는 피로며, 이 좋은 광경을 눈앞에 두고도 경치를 만끽하기는 커녕 툴툴대며 동생과 사소한 말다툼을 벌였으니 말이다. 아마 이곳 피르스트를 찾은 사람들 중에는 주위 경관에 홀려 나처럼 언짢았던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이런 경치를 눈 앞에 두고서 언짢은 상태에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을 것이다.
피르스트 일대로는 다양한 난이도의 트레킹 코스가 많다. 본인이 트레킹을 여행 컨셉으로 잡는다면 사실 스위스의 여러 도시를 전전할 필요도 없이 그린델발트, 그 안에서 피르스트 안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생각에서 피르스트에 대한 여행 정보를 알아볼 당시, 일단 바흐알프 호수(Bachalpsee)를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여력이 된다면 파울호른(Faulhorn)까지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출발 전 리셉션의 직원에게 파울호른에 관해 물어보니 바흐알프 호수에서부터 왕복으로 2~3시간이 소요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바흐알프 호수까지 다녀오는 것을 목표로 했다.
피르스트 일대는 유달리 다양한 액티비티들이 갖춰져 있어서 패러글라이딩은 물론이고, 플라이어(Flyer), 독수리 형상을 닮은 글라이더, 수동 스쿠터, 카트에 이르기까지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이런 액티비티들에 큰 관심은 없었고 다만 클리프 워크에 올라가보기는 했는데, 이마저도 엄마와 동생은 무서워서 아버지와 나만이 클리프 워크에 올라갔다. 아무리 철제로 튼튼하게 지어졌다고는 하지만 바로 아래가 깎아지를 듯한 절벽이었기 때문에 아찔하기는 아찔했다. 알프스가 품은 자연이 장대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각종 액티비티 시설에 인공물이 설치되어 있는데도 자연 속의 작은 점 하나로 묻혀 버린다.
알프스의 자연은 멀리서 보면 그저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곳으로 터삼아 살아가는 생명체들에게 그리 호락호락한 곳은 아닌 것 같다.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물은 높은 산 위에서는 맑게 흐르지만 산허리 아래로 내려갈 수록 석회질을 띠며 혼탁한 색을 낸다. 아무래도 오래된 산악지형이다보니 토양도 척박하다. 그 틈바구니에서 어리광을 부리듯 야생화들이 꽃을 피우고, 일종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은 별달리 힘들이지 않고 풀을 뜯는 소떼와 염소떼의 모습뿐이다. 종종 까마귀(Chouch)가 거대한 무리를 지어 날아오르는데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새>를 연상시킬 만큼 기세가 등등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바흐알프 호수까지 예상소요시간으로 안내되었던 40~50분이 다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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