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1 / 바흐알프 호수까지(Bachalpsee, Grindelwald)여행/2019 스위스 종단여행 2019. 9. 18. 00:51
야트막한 언덕을 오른쪽으로 돌자마자 거짓말처럼 자그마한 호수가 나타난다. 계속 완만한 경사면을 오르기 때문에 호수가 과연 자리잡을 수 있을까 싶었던 지형에 호수는 자리하고 있었다. 바흐알프 호수(Bachalpsee). 이 호수는 마치 욕심꾸러기인 양 '호수, 바다'라는 의미의 말을 두 개(Bach, See)씩이나 이름 속에 담고 있다. 이 호수는 반(半)자연적인 제방에 막혀 봉우리 위 움푹한 지형물을 터삼아 맑은 물을 한 가득 담고 있다. 또한 완전히 자연적인 제방에 의해 아우와 형님처럼 큰 호수와 작은 호수가 나뉘어 한 쌍의 경관을 이룬다.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느긋하게 걷고, 그 중 일부는 파울호른을 향해 능선을 따라 길을 오른다. 유럽 사람들의 일광욕 사랑은 익히 알고 있지만, 호숫가를 향해 걸어가는 비키니 차림의 여성은 이색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스위스 여행을 하는 내내 느꼈던 것 중 하나는, 관광객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작은 쓰레기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이렇게 무구(無垢)한 자연을 보고 있다보면 없던 양심(良心)도 발동해 좀 더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 같다+_+
어디에서였던가 여름 스위스는 야생화가 참 아름답다는 글을 읽었는데, 꽃을 볼 줄 몰라서인지 아니면 철을 약간 빗겨간 건지 꽃이 예쁘다는 느낌은 크게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곤돌라며 산책로며 관광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에 망정이지 기후와 토양이 척박한 고산지대다보니, 마치 바닥으로부터 멀어지면 곧장 생명을 박탈당하기라도 할듯 야생화마다 거북이처럼 땅에 납작 엎드려 있다. 여하간 꽃은 오히려 한여름 우포늪에서 봤던 참나리, 부추꽃이 아기자기하게 예쁜 느낌이 있었다.
혼자 왔더라면 분명 발트슈피츠(Waldspitz)를 통해 숙소까지 걸어내려갔겠지만, 가족여행이니 만큼 체력상태를 감안해 곤돌라로 직행! 그린델발트로 내려가는 마지막 곤돌라 시각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았는데도 클리프워크 일대에는 사람이 많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할 때 큰 묘미 중 하나가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 한 번 바라볼 때인데, 같은 대상을 다른 각도, 다른 관점에서 한 번 더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흐알프 호수에서 피르스트 정거장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한 번 바라보는 베터호른과 슈렉호른... 뒤이어서 바흐알프를 향해 올라올 때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실개천이 보이고, 그 다음에는 뿔 달린 염소떼가 눈에 들어온다.
스위스는 자연친화적이기도 하지만 동물친화적이기도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인간의 목적 달성을 위한 범위 내에서 동물에 친화적이지만 말이다. 똑같이 인간의 통제 아래 살아가는 동물일지라도 스위스에서 풀을 뜯는 소를 보며, 인도의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소들이 떠올랐다. 주식(主食)으로 쓰레기를 먹고 청과물상이라도 기웃거리면 과물상에게 구박당하기 일쑤인 파하르간즈의 천덕꾸러기 암소들..ㅠ (그렇다. 인도에서는 아힘사의 교리에 따라 암소를 신성시한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판이하다) 길을 잃은 소는 델리의 복잡한 도로 한복판에서 릭샤—일명 뚝뚝—의 매연을 감내해야만 한다. 이 소들도 생활반경이라는 게 있을 터.. 소가 무리지어 사는 동물인지 혼자 활동하는 동물인지도 모르겠지만, 인도에서는 그 어떤 소들도 생태적으로 조화롭지 못한 상태에서 고아처럼 살아간다. 그와 반대로 스위스의 소들은..
각설하고, 숙소로 돌아온 뒤에도 해가 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좋은 경치를 더 둘러보지 않는 게 아쉽기도 했지만 이미 녹초가 된 상황=_= 그나저나 곤돌라 안에서 가족과 대화하며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이 나라는 부동산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무척 궁금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좁은 면적의 땅을 이렇게 놀리지는 않을 텐데, 그린델발트의 주택(샬레)들은 담장이나 울타리 어떤 경계도 없이 말끔히 정돈된 채 쾌적하게 관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하간 반나절 이동으로 인해 고됐던 첫날의 일정도 어느덧 마무리가 되었다.
'여행 > 2019 스위스 종단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2 / 융프라우요흐로부터(Jungfraujoch, Wengen) (0) 2019.09.26 DAY2 / 세상 바깥이라면 어디든(N'importe où, hors du monde) (0) 2019.09.21 DAY1 / 피르스트로부터(First, Grindelwald) (0) 2019.09.14 DAY1 / 프랑크푸르트를 거쳐(From Frankfurt a.M to Grindelwald) (0) 2019.09.14 Prologue. 추구한 것과 잃은 것 (0) 2019.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