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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 / 프랑크푸르트를 거쳐(From Frankfurt a.M to Grindelwald)여행/2019 스위스 종단여행 2019. 9. 14. 00:36
우리는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취리히로 들어가는 비행편을 구했다. 보통은 유럽여행을 가서 스위스 한 곳에 다 투자하는 경우도 드문 것 같고, 독일을 경유해 스위스로 입국하는 경우도 그리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우선 길지 않은 일정에 2개 이상의 나라를 둘러보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해서 스위스 한 곳만 둘러보기로 했고, 일단 그렇게 결정이 되자 합리적인 가격에 티켓을 찾다보니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는 표를 구하게 되었다. 반면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프랑스를 둘러본 뒤 스위스로 들어오는 경우가 꽤 많은 듯하다. 여하간 프랑크푸르트는 경유지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었고 단지 하루 숙박을 하는 곳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취리히까지 거리가 멀지 않아 차라리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취리히까지 열차로 이동하는 방법도 생각을 해보았지만, 장시간 비행에 지치실 부모님 체력을 감안해서 아예 프랑크푸르트에서 레이오버(layover) 하기로 했다)
사실 여행 전날까지도 야근을 한 데다 근래 야근이 잦다보니 저기압인 상태였고 뭔가 여행에 집중하지 못한 채 넋이 나간 상태였다. (특히나 여행 직전까지 강아지 맡길 곳을 알아보느라 경황이 없었는데, 결국 야근 때문에 강아지 맡기는 장소에 가보지도 못해서 심란함까지 가중되었다=_=) 여하간 독일에 도착하니 약간은 기분이 유쾌해졌다. 뭐라 해야 할지, 독일 특유의 분위기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현대적이고 정갈한 건축물과 도로, 단정한 사람들의 옷차림, 질서 있는 모습까지. 세련됨은 부족했지만 그 자리를 차분함이 메웠고, 유럽의 중세적인 화려함은 없었지만 현대적인 시도와 전환이 느껴졌다. 가장 먼저 여기가 바로 독일이야! 하고 느꼈던 것은 공항 표지판에 사용된 파란 색깔이었다. 저런 군청색은 아시아 국가에서는 공공시설에 흔히 쓰이지 않는다.
-ang, -ung으로 끝나는 단어가 많고, 명사와 명사가 만날 때 하나의 명사로 묶어버리는 문법들을 보니, 여기가 잠시 언어로 접했었던 독일이라는 나라구나 하는 것이 실감된다. 이 나라 특유의 분위기가 프랑크푸르트라는 대도시를 휘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말을 걸어보면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데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이 사람들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사는 사람들일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연결된 숙소는 내가 예약한 곳이었는데, 공항과 직결되어 있다고 지도에서 알려준 것과 달리 길을 잘못 접어들어 한참을 빙 돌아서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추적추적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일단 공항 근처를 벗어나자 인적 하나 없이 오로지 직선으로 빚어낸 현대적인 건물들만이 위압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 건물들 사이를 쌩쌩 가로지르는 자동차들의 엔진소리가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의 존재를 일깨워 줄 뿐이었다.
정말 가까스로 찾아 온 숙소에서 프론트 데스크에서 근무증인 흑인 여성에게 키를 받았다. 트윈룸으로 방을 총 2개 잡았는데, 인터넷으로 예약을 할 때 하나는 성을 앞에 쓰고 하나는 이름을 앞에 써서 직원이 내게 예약된 방을 안내하기까지 약간 시간이 걸렸다;; 여하간 간단히 짐을 풀고 동생과 좀 전에 지나왔던 마트로 가서 음료와 초콜릿 따위를 샀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다음날 먹을 건포도 빵(뻑뻑하기만 하고 정말 맛이 없었다)도 좀 사두었다. 심지어 나는 이 빵을 살 때 돈을 지불하려고 마트에서 샀던 물병을 잠시 내려놨는데, 그 길로 완전히 까먹고 숙소로 되돌아왔다. 이 때부터도 좀 얼빠진 상태에서 돌아오지 못한 상태였던 것 같다;;
사진 속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이 말해주듯, 프랑크푸르트에서 취리히로 넘어가는 비행기는 아침 매우 이른 시각에 있었다. 우리는 미리 움직여서 무인 수하물 시스템으로 비행기에 실을 시스템을 미리 부쳐놓고 안내된 게이트에 가서 대기하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원형 유리벽에 베토벤, 모차르트, 괴테 등등 독일의 내로라하는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게이트를 향해 조금 걸어가다 보니 네스프레소 머신이 보인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리 없듯, 나는 곧장 기계로 달려갔다. 이런 커피가 2유로씩이나 하다니 비싼 감이 있었지만, 이미 마음이 기운 상태였다. 여기서 한 번 더 실수를 저지르는데, 딱히 자판기에 신용카드를 넣어본 일이 없는 나는 결제가 끝난 뒤 신용카드를 뺀다는 것을 까먹은 것이다. 아니 신용카드가 결제된 뒤에도 기계에 남아 있으면 경고음이라도 울려주던가..커피를 마시다가 뒤늦게 카드를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누군가 내 신용카드를 가져간 뒤였다ㅠ
게이트가 바뀌었다는 안내를 뒤늦게 받고 나서 공항 반대편 게이트로 뛰어가는 동안에도 좀 전의 커피머신 주위를 서성이며 양심적인 누군가가 카드를 어딘가에 두지 않았을까 둘러보았지만 카드는 찾을 수 없었다. 앱을 통해 급히 카드 분실신고를 했지만 오류 메시지가 떴고, 스위스에 도착한 뒤에도 유심칩을 갈아끼워가며 국내에 전화를 건 뒤에야 분실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취리히까지 가는 데는 순 비행시간으로 35분에 불과했다. 여하간 신뢰를 잃은(?) 뒤로 비용이 나가는 것들(가령 열차티켓 같은 것)은 일체 동생이 챙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동생이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스위스에 입국한 뒤로부터는 무조건 기차 아니면 곤돌라로 모든 이동을 해결했다. 우리의 여행 시작점은 취리히가 아닌 그린델발트. 취리히 공항에서 그린델발트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다시 두 시간 가량이 더 걸리는데, 어쨌든 이 길을 먼저 움직여야 했다. 취리히 공항 역 이전부터 사람들을 가득 실어서 오기 때문에 열차에는 자리가 없었다.—더군다나 우리 열차티켓은 자유석 프리패스고 구매했기 때문에 빈 자리가 나는 경우에만 앉을 수 있었다. 다행이 얼마나 갔을까 취리히 중앙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렸기 때문에 이후 인터라켄까지 가는 길에는 앉아서 갈 수 있었다. 피로와 시차적응이 몰려온 나머지 나는 인터라켄까지 이르는 내내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인터라켄은 경유지점일 뿐이고 그린델발트까지 가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산악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이 구간부터는 융프라우 VIP 패스가 적용되는 구간이고, 검표가 있을 때마다 이 역시 동생이 챙겨주었다. 인터라켄이 융프라우 여행의 베이캠프라고 하지만, 사실 이곳 그린델발트만 해도 관광객이 많다. 특히 아시아 사람들이 많은데, 그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점도 신기하다. 곤돌라에서는 일본어 방송도 안 나오는데 한국어 방송이 나올 정도다.
아기자기한 샬레들—동생은 이 샬레 양식의 가옥에서 꼭 머물고 싶어했었다..결국 더딘 여행 준비로 그렇게 되지는 못했지만—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우리의 첫 날 여정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니 끝으로 곤돌라를 이용해 피르스트(First) 방면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아침 프랑크푸르트에서 넘어온 비행기에다, 공항역에서 인터라켄까지 열차를 타고, 그린델발트까지는 산악열차를 이용하다보니, 무엇보다 이 모든 길에는 무거운 캐리어가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_-) 곤돌라를 타기 앞서 휴식을 취할 겸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스테이크와 펜네 파스타, 뢰스티(Rösti)로 점심을 해결하고 체력을 되찾은 뒤에야, 우리는 숙소가 위치한 보르트(Bort)에 다다를 수 있었다. '보르트'는 피르스트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잡은 곳으로 숙소라고 해봐야 딱 한 군데밖에는 없다. 그린델발트 지역에서 숙소를 고를 때, 벵엔(Wengen)이나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 맨리헨(Männlichen) 지역은 우선 제외시켰고, 그린델발트역 시내와 피르스트로 한정했을 때 구할 수 있는 숙소가 심각할 정도로 없었다. 스위스에 있으며 머무른 도시들(체르마트, 루체른과 더불어) 중 숙소를 구하기가 가장 어려웠던 곳이다. 때문에 숙소를 구할 수 있는 날짜에 맞춰 그린델발트 여행일정까지 앞당겼고, 결국 순서상 가장 먼저 들러야 될 거라 생각했던 루체른을 가장 마지막으로 미뤄두었다. (루체른에서의 일정은 또 그에 맞게 잘 조정을 했다)
여행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것이 또 일정을 그렇게 잡아놓으니 또 그런 대로 잘 흘러갔다. 우리는 남은 곳 중에 괜찮은 선택지가 보르트의 숙소밖에 없어서 이곳으로 정했는데, 한국사람들이 꽤 많았던 걸 보면 꽤 알려진 곳인 것 같다. 우리가 이 숙소를 망설였던 이유는 딱 하나, 뷰가 좋을지 안 좋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창문을 열어젖히면 아름다운 산줄기가 바라다보이는 방이었다. 여하간 이렇게 긴 길을 이동하고도 시간이 반나절 남은 우리가 향할 곳은 피르스트였다. 보르트 자체가 피르스트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피르스트는 스위스 여행 첫날 가볍게 둘러보기로 했지만 동생은 지금도 이야기하기를 이 날 들렀던 곳이 여행을 통틀어 가장 좋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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