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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2 / 융프라우요흐로부터(Jungfraujoch, Wengen)여행/2019 스위스 종단여행 2019. 9. 26. 00:06
스핑크스 전망대(가장 상층부의 관람장소)에서 묀히(Mönch)와 융프라우(Jungfrau)를 둘러보고 난 뒤에도 탐방로는 한참 이어진다. 밤하늘 아래 사막을 횡단했던 어린왕자를 연상케 하는 별로 꾸며진 공간이 있는가 하면, 하얼빈(哈尔滨)의 얼음축제를 연상시킬 만한 길다란 얼음복도가 뒤이어 쭉 이어진다. 사실 이들 모두 그리 큰 감흥이 있지는 않았고, 기억에 남는 것은 융프라우요흐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관광지로 개발되기까지의 연혁이 담긴 공간이었다. 1890년대부터 이 높은 곳에 땅굴을 파서 선로를 끌어오고 전망대를 세울 생각을 한 걸 보면 여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앞서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비록 남아 있는 사진 속 스위스인 인부들의 남루한 복장을 보면 몇몇 수완 좋은 사업가들이 주도적으로 벌인 일인 것 같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지만..(아니, 분명 그러할 테지만..)
통로의 중간 지점에는 전망대 건물 밖, 그러니까 직접 바깥의 눈을 밟으며 융프라우요흐를 만끽할 수 있는 편평한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날씨가 변화무쌍하기를 바라며 융프라우(Jungfrau)가 짠!! 하고 얼굴을 드러내보여주길 기대했지만 이 젋은 여성(Junge Frau)는 간단한 시선조차 건네지 않았다.
여하간 이 지점을 돌아나와 전망대의 출발지점에서 우리는 무료로 제공되는 한국 컵라면을 먹었다. (이게 사실상 점심이기도 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관광지에 올라 컵라면을 먹는 것도 신선한데, 한국인이 아닌 아시아인들이 저마다 하나씩 컵라면을 들고 있는 풍경도 신선하다. 크게 샌드위치, 샐러드, 컵라면의 세 가지 메뉴가 제공되는데, 물론 구입을 해야 하는 샌드위치나 샐러드와 달리 컵라면은 무료로 제공된다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여하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컵라면을 찾았다. (믿거나 말거나) 비화(秘話)를 듣자하니 우리나라 회사에서 마케팅을 목적으로 홍보차 컵라면을 무료 제공하고 있다는데, 생각이 지나친 건지 모르겠지만 짠 국물이 많이 남는 음식이다보니 환경에 악영향이 갈까 우려가 되기도 했다.
스위스에 머무르면서 기념품샵을 이곳저곳 들러보았지만 가장 종류가 다양하고 컸던 곳이 또한 융프라우요흐 전망대의 기념품샵이기도 했는데, 30분에 한 대 꼴로 운행하는 하산(下山)하는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다보니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빨간 스위스 국기 로고가 박힌 파란 색 아우터를 하나를 샀다.
...글쎄, 다시 어두컴컴한 동굴을 통과한 열차는 산비탈로 얼굴을 내미는데 어째 날씨가 심상치 않다. 잠시 후 올라오는 열차에서 봤던 검표원 아저씨는 하산하는 승객들의 표를 검표할 때마다 스위스의 목가적인 풍경이 그려진 포장 초콜릿을 하나씩 건네준다. 나는 힘없이 웃었고, 검표원 아저씨는 어디까지 호의를 베풀고 싶었던 건지 동생에게 농(弄)을 건네기도 한다. 이윽고 열차가 분기점인 클라이네 샤이덱(Kleine Scheidegg)에 도착했고 벵엔(Wengen) 방면 열차로 갈아탈 즈음에는 이미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움직여 융프라우요흐를 행선지로 정하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만족스러운 기분에 잠겨 차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느린 속도로 열차가 앞으로 미끄러졌고, 그린델발트를 오가는 열차와 달리 라우터브루넨을 오가는 열차에는 확연히 승객이 적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린델발트와 라우터브루넨은 클라이네샤이덱 지점을 기준으로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 최근 들어 라우터브루넨 방면으로 벵엔이나 뮈렌(Müren) 같은 마을도 관광객이 늘었다고는 하나, 아직 그린델발트나 인터라켄에 미치지는 못하나보다.
바깥 풍경도 충분히 여유롭지만, 차 안의 풍경도 꽤 느긋하다. 우리 가족 앞에는 4인 가족이 앉아 있었고(스위스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 옆으로, 그러니까 우리 대각선 방면으로는 젊은이 서너 명이 앉아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독일어를 쓰지는 않았고 외모로 보면 이탈리아 사람 같기도 했는데, 검표원이 와도 티켓을 꺼내기는커녕 어떤 이유로 티켓이 없는지에 대해서만 거리끼는 기색없이 설명했다. 그런 사소한 소란을 제외하면 라우터브루넨으로 내려가는 길은 대단히 평화로웠다.
열차는 종착역인 라우터브루넨 역에 이르기에 앞서 잠시 벵엔 역에 정차했는데 왜 사람들이 여름철 라우터브루넨 일대보다 그린델발트 일대를 더 찾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경사면이 완만하고 널따란 그린델발트와 달리 벵엔이나 라우터브루넨은 협곡 같은 지형에 자리잡고 있어서 마을의 규모 자체가 크지 않다. (그만큼 부대시설도 부족하다) 그게 아니라면 사실 바라다보이는 경치도 그린델발트만큼 빼어난 곳이지만, 비탈이 가파르다보니 전반적으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다만 이곳 라우터브루넨과 벵엔 지역은 다양한 크로스컨트리 코스를 갖추고 있어 겨울철이 되면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곳이라고 한다.
요란한 샘물들(Laute Brunnen)의 도시,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에 드디어 입성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아기자기한 마을의 크고 작은 소리들을 다 귀담아 듣고 싶지만, 우리는 반나절 일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느긋하게 폭포 한 군데 정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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