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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5 /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마테호른이 바라다보이는 곳여행/2019 스위스 종단여행 2019. 10. 18. 22:00
체르마트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다섯 시경. 체르마트의 도시 분위기는 그린델발트의 그것과 확실히 다르다. 우선 도시의 규모가 아담하고 길도 협소하다. 화석연료 사용이 금지된 지역인 만큼, 인도의 릭샤를 닮은 소형 전기차―물론 끈질기게 흥정하고 난폭하게 운전하는 릭샤와 결코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다;;―가 운행한다. 게다가 마차도 다닌다. 사람들도 관광객 느낌이라기보다는 등산객 느낌이 난다.
우리의 숙소는 비스파(Vispa) 강 바로 옆에 위치한 빌라로, 원래 예약해둔 호텔에서 별도 건물에 따로 운영하고 있는 아파트 형태의 숙소였다. 마테호른 봉우리가 한눈에 보이는 지점에 있다고 직원이 설명해 주어서 기대가 컸는데, 과연 마테호른 봉우리가 떡하니 보이는 위치이기는 했으나..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크레인이 들어서서 경관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다:( 그밖에 금고 다이얼을 담긴 현관문 때문에 문 열기가 매우 까다로웠던 숙소이기도 했다.
체르마트의 숙소에서는 아침이 따로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숙소 인근의 Migro라는 마트―Coop 못지 않게 스위스에서 흔히 보이는 대형마트다―에서 아침거리(토스트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를 사왔다. 7시 반에 문을 닫는 마트여서 7시에 도착해서 장을 본 게 다행이었는데, 옆에 달려 있는 와인가게는 몇 분 정도 더 늦게 닫아서 와인 두 병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레저 비용(+서비스가 투입되는 재화)이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비싸서 그렇지, 스위스의 생활물가는 관광객들에게 익히 알려진 것처럼 합리적인 수준이다. 우리는 마트에서 장봐온 재료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테라스 밖으로 마테호른과 비스파 강을 바라보며 먹는 김치찌개라니!)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로 향하는 산악열차의 정거장은 체르마트 역으로부터 동쪽으로 직각을 이루고 있다. 대략 25분마다 열차가 출발하는데, 융프라우 산악열차 못지 않게 관광객들로 붐빈다. 마침 출발 준비중인 열차가 있어 우리는 곧장 열차에 올라탔다. 마을의 협소한 공간을 관통한 철로는 곧이어 산악지대로 진입했다. 융프라우 산악열차처럼 터널구간이 따로 있지는 않았고, 이미 융프라우 산악열차를 타본 탓인지 그리 큰 감흥은 느낄 수 없었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는 두 개의 천문대를 대칭으로 갖추고 있는 벽돌건물인데, 19세기에 지어진 융프라우요흐 전망대보다도 중후한 느낌이 난다. 역에 내려 전망대까지 가는 길에는 마테호른만 보이고, 전망대의 가장 위에 올라서면 비로소 몬테로사와 리스캄, 그리고 그 일대의 빙하까지 내려다 보인다. 패러마운트 영화배급사의 로고로도 활용된 마테호른이 제공하는 장관에 비해 이들 봉우리의 풍경은 수수하지만, 마테호른의 풍경에 무뎌져서일까 오히려 몬테로사가 아릅답게 느껴진다.
장미라는 말을 간직한 이름 그대로 몬테로사의 자태는 아름답다. 반면 마테호른은 추위속에 콧김을 내뿜는 야생마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테호른의 뒷편, 그러니까 이탈리아쪽 국경에서 바라보는 마테호른의 풍경은 어떨지도 궁금하다. 마테호른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는 게 스위스 지역인 것을 보면, 이탈리아 쪽에서 바라보는 마테호른의 풍경은 평범한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해 마테호른은 체르마트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 아니다. 비스파 강 건너편으로도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줄기가 굽이치기 때문. 다만 정사면체를 닮은 특유의 기하학적인 형태 때문에 마테호른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되었다.
관광객 일부는 전망대를 곧장 가로질러 반대편 산으로 하이킹을 떠난다. 우리는 이 일대의 빙하를 한껏 둘러본 뒤 전망대 건물안으로 되돌아와 기념품 가게도 둘러보고 점심도 해결했다. 점심은 맛이 없는 뷔페식이었다. 한국에서 하던 버릇대로 가벼운 짐을 테이블에 놓아두고 음식을 접시에 담으러 갔는데, 자리로 되돌아오니 옆자리에 앉아 있던 머리 희끗한 아저씨께서 소곤소곤 말씀을 거신다. 앞으로는 절대로 물건을 두고 다니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아무리 스위스가 청정하고 돈깨나 쓸 것 같은 관광객이 많다고는 하지만 치안을 보장할 수 없는 여느 유럽국가와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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