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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5 / 로텐보덴(Rotenboden)과 리펠베르그(Riffelberg)를 거쳐, 야생화의 향연여행/2019 스위스 종단여행 2019. 10. 19. 00:01
아름다운 몬테로사를 등 뒤로 하고 이제는 마테호른을 마주보며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뻗어나온 경사면을 걸어내려간다. 그러니까 고르너그라트를 기점으로 동쪽에 자리잡은 몬테로사와 동생처럼 어울리고 있는 리스캄(Lyskamm)에서부터 서쪽에 자리잡은 마테호른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한참 걸어가다 뒤돌아 보면 언덕 너머로 몬테로사가 고개를 빠꼼히 내밀었다 사라지는 풍경이 반복된다. 혹성을 여러 개 이어붙인 뒤 새하얀 눈가루를 얹은 듯한 몬테로사의 모습은 정겹기까지 하다.
원래는 로텐보덴(Rotenboden)도 올라가볼 생각이었지만, 마침 봉우리를 잇는 곤돌라가 수리중이어서 그냥 지나치고 곧장 리펠베르그(Riffelberg)로 향했다. 크고작은 호수를 지나치고 비탈에 난 오솔길을 따라 걷는 동안 마테호른이 미묘하게 자세를 바꿔가며 위용을 과시한다. 비스파 강 건너편 메텔호른(Mettelhorn)에서 뻗어나온 산등성이도 모양새는 특출나지 않지만, 그 높이만으로 풍경 속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여름의 습기 때문인지 마테호른 주위에는 시시각각 모양을 바꿔가며 구름이 끼어 있었다. 마테호른은 끝끝내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심산일까. 엄마와 동생은 리펠베르그에 이르러 기차로 하산하기 위해 간이역으로 향했고, 나와 아버지는 그 길로 리펠알프(Riffelalp)를 향해 걸어갔다. 이튿날 수네가 파라다이스(Sunega Paradise)를 트레킹했으니, 비록 길지는 않지만 스위스 하이킹이라는 바람을 이룬 셈이다. 아버지와 나는 리펠알프(Riffelalps)까지는 가지 않고 푸리(Furi) 방면으로 길을 틀었다.
몇 차례 바위에 올라 사진을 남기고, 해바라기처럼 마테호른을 정면에 두고 천천히 걸었다. 잠시 나무 그늘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늘에서 쉬었다 다시 길을 나서니 곧 비스파 강 상류의 저수지가 나타나고, 푸리 역이 가까워지니 작은 놀이터와 벌목장, 그리고 자전거 대여소가 나타났다. 아마도 이 일대에서 한창 간벌(間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길을 내려갈수록 인적이 드물어졌다. 가끔 산악열차를 이용하지 않고 산아래에서부터 등산해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는 흰머리가 무성한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었다. 간간이 MTB를 타는 헬멧 쓴 젊은 사람들의 모습도 활기가 있다. 조금 더 풍경에 시선을 돌리면 의외의 투박함에 놀라게 되는데, 석회질에서 샘솟은 물은 투명하지가 않고 꽃들도 두꺼비처럼 납작하고 볼품이 없다.
어느덧 가까운 산에 의해 마테호른의 모습이 가려지고, 비스파 강의 수원지(水源地)가 가까워질 즈음 푸리(Furi) 역이 나타났다. 체르마트까지의 길이 그리 멀지 않은 셈인데, 엄마와 동생에게 몇 시쯤 다시 합류할지 연락해보니 구시가지 근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단다. 아버지는 지친 기색 없이 걸어가시는데, 정작 내 체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체르마트로 길을 서둘러보지만 좀처럼 시내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엄마와 동생과 다시 만났을 때, 둘은 이미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기 위해 장보기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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