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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7 /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여행/2019 스위스 종단여행 2019. 11. 2. 00:58
스위스로 날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스트라스부르의 ‘스’도 고민해보지 않았었고, 다만 만약의 옵션으로 바젤에 가게 될 경우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의 국경이 합류하는 지점을 관광하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만 하고 있었다. 루체른에서의 일정이 여행 후반부에 잡혀 있다보니, 융프라우와 마테호른에서 다양한 자연경관을 본 우리로썬 루체른 여행에서 어디에 방점을 둬야 할지 조금 난감한 상황이었다. 바젤에 워낙 다양한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보니 개인적으로는 유명한 온천을 차치하고서라도 바젤을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부모님이 이전에 방문했던 베른이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고 하니 취리히에 버금가는 바젤에서 도시 투어를 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아예 색다른 아이디어를 낸 것이 스트라스부르 행이었다. 프랑스의 정취를 잠시나마 느껴보고 싶다는 사심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어렵사리 유럽 대륙까지 온 이상 부모님께 나라 하나라도 더 보여드려야겠다는 의욕이 앞섰다. 막상 ‘로컬처럼 느긋하게 여행하며’ 여행의 후반부를 마무리하고 싶었던 동생으로서는 내 제안이 달갑지 않았을 것이고, 평소의 동생답지 않게 삐친 기분을 좀처럼 풀지 않았다. 반면 부모님은 비록 채 하루가 안 되는 일정이기는 하지만 프랑스를 다녀온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며 반색하셨지만(어른들은 으레 몇 군데를 다녀왔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로서는 꽤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아마 동생으로썬 그 당시 뜬금없이 바람을 잡는 내가 욕심꾸러기에 고집불통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분명!!
일단 스위스를 벗어난다는 것에서부터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두 가지 종류(스위스 패스와 융프라우 VIP 패스)의 레일패스를 구입했지만 모두 스위스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티켓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를 일회성으로 다녀오는 데 유레일 패스를 끊을 수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바젤 역에서 새로운 종류의 티켓을 일절 에누리 없이 구매해야 했다. 당연히 예정에 없던 지출이었다. 한편 스위스 국내선이 발착하는 역과 국제선이 발착하는 역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5분 정도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럴듯한 표지판이 없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매표 자판기에서 티켓을 끊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는데, 다이얼을 돌리는 방식으로 조작하는 독특한 기계여서 줄의 뒤쪽에 있던 외국인이 친절하게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열차를 코앞에서 놓친 뻔했다.
베른이든 바젤이든 스위스에서 규모 있는 역의 콘크리트 벽면에는 어김없이 그래피티들이 그려져 있어서 슬럼가의 분위기를 풍기는데, 스위스에서 프랑스 국경으로 넘어가는 차창 너머 풍경에서는 그런 이미지들마저도 점차 사라지고, 오랫동안 방치된 빈 건물들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지 오래된 듯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는 간이 역사(驛舍)가 나타난다. 조금 더 지나가면 지형은 바젤 일대와 크게 차이는 나지 않지만 대부분의 토지가 목초지 대신 농지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쾌속열차가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정차하는 역이 적지 않은데, 상당히 노후한 플랫폼이 연이어 나타나서 이게 바로 프랑스의 스웩(?)인가 싶기까지 하다.
스트라스부르 역사 또한 굉장히 오래된 풍모를 간직하고 있는데, 석조 건물 바깥으로 돔형의 유리구조를 덧대어 놓아서 신구(新舊)를 적절히 조화시켜 놓았다. 또한 '유럽의 수도'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출입구 일대에는 여러 나라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데, 방사형(放射形)으로 길이 뻗어 있는 역 앞 광장은 뙤약볕이 기승을 부리는 늦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다소 스산한 풍경을 자아냈다. 광장이 넓어서 빠져나가는 데만 해도 꽤 많은 발걸음을 들여야 했는데, 이전에 스위스의 올텐 역에서 잠시 기차를 바꿔 탈 때 공중화장실을 쓰는 과정에서 애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화장실도 들를 겸 광장 변두리의 카페에 들렀다. (유럽은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정말이지 까다롭다..) 몇 마디 짧은 프랑스어로 시원한 음료를 주문하고, 건물 내 화장실을 이용했다.
여전히 불만 가득한 동생의 표정을 살피며 쁘띠 프랑스(Petite France)로 향했다. 우리는 보방댐(Barrage Vauban)을 거쳐 쁘띠 프랑스에 진입할 목적으로, 국립행정학교(E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을 가로질렀는데, 학교에 이르는 동안 일부 도로 구간은 트램 선로를 새로 까느라 돌로 된 도로바닥을 완전히 까뒤집어 놓았다.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는 국립행정학교에 가까워질 수록 정돈되어 갔고 보방댐에 이르니 본격적으로 쁘띠 프랑스가 눈앞에 나타났다. 일종의 구식 제방인 보방댐에는 옛 유물이 전시되어 있기도 했고, 스트라스부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었다. 쁘띠 프랑스를 사뿐하게 떠받치고 있는 일 강(Ill)은 이내 라인강과 합류하여 독일 쪽으로 흘러들 것이니...유럽의 지형은 가리가리 국경선이 그어진 크고 작은 국가들만큼이나 복잡하다.
잠시 후 우리는 손에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던 쁘띠 프랑스에 올라서 있었다. 스트라스부르와 저울질하던 도시 중의 하나였던 콜마르(Colmar)만큼 동화 같은 풍경은 아니었지만, 독일풍의 오래된 건물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로 강 위에 내려앉아 있는 모습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쁘띠 프랑스는 삼지창 형상을 하고 있는 하중도(河中島)에 자리잡고 있는데, 우리는 둘러보는 것은 간단히 둘러보고 점심시간을 넘기고 있는 시각이었으므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우리가 간 레스토랑은 독특한 이름을 지닌 곳―’L’oignon(양파)’라는 곳이었는데 기대와 달리 대표적인 양파 메뉴는 없다―으로 이곳에서 가게 이름만큼 독특한 돼지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법한 허브향이 강하게 풍기는 요리였지만, 마치 잭나이프처럼 생긴 식기와 함께 돼지고기를 스테이크처럼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8월 하순에 유럽을 갔으니 한창 피서철까지는 아니더라도 바캉스 시즌인 셈인데, 큰 관광도시라 할 만한 스트라스부르에서 한국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던 건 아마도 스위스에서 너무 많은 한국인들을 마주쳤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여하간 동생이 화를 누그러뜨리고 얼굴에 홍조를 띠기 시작한 게 점심을 먹고 난 뒤 치즈가게를 가면서부터였다. 미식가가 아닌 나도 뭔가 소장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갖가지 치즈들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콩테 치즈와 와인향 치즈를 구입했다. 여기서도 어떻게든 배워놓은 프랑스어를 써보려고 애써보았지만, 마음과 실력이 따로 놀아서 바디랭귀지를 많이 섞어 써야만 했다. 같은 종류의 치즈라도 얼마나 숙성시켰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만큼 어떤 치즈를 선택할지 넷이서 먼저 정한 뒤 수비드(Sous vide)로 포장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동생과 재빨리 이야기를 마쳤다. 치즈를 사는 작은 구매 행위에서 사소하지만 삶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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