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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7 / 쁘띠 프랑스(Petite France)에서 대성당(Cathédral de Notre Dame)으로여행/2019 스위스 종단여행 2019. 11. 6. 23:08
수줍음이 많은 성격 때문인지 젊은 가게 주인은 이런저런 부탁을 할 때마다 동그란 얼굴을 붉히며 성실하게 치즈를 썰어서 포장해 주었다. 한국에서라면 갑질(?)―결정을 한 번에 내리지 못한 데다 의사소통이 완벽하지 않아 여러 번 주문을 바꿔야 했다―이라 할 만큼 번거롭게 부탁을 해도, 눈이 휘둥그레진 주인은 우직하게 치즈를 다룰 뿐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 프랑스어가 어설프다는 걸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진지하게 프랑스어로 치즈를 설명하고 우리가 고개를 갸웃하는 대목에서는 해당 표현을 반복해서 강세를 넣었다는 점이다:)
기분이 풀어진 동생을 보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한 손에 치즈가 한 가득한 가방을 들고 가게를 나섰다. (평소에 치즈를 즐겨먹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사치를 부리다니!!) 해가 중천을 넘기면서 좀 더 농익은 햇살이 석조건물마다 스며들었고, 모든 골목은 저마다 수많은 인파를 쏟아내고 있었다. 과연 스트라스부르라는 도시의 규모를 느끼며 걷는 사이 자그마한 광장 위로 아기자기한 회전목마가 급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익숙한 멜로디를 흘리며 아무런 관객도 싣지 않고 청승맞게 뱅글뱅글 도는 회전목마. 아무리 프랑스라고 하지만 어쩐지 특유의 통속적인 느낌에 웃음이 나온다.
청록 빛깔을 띤 현대식 트램이 오래된 건물 사이를 미끄러지듯 가로지르는 대로를 건너, 조금 더 걸어가자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은 분명 붉은 색 돌로 정교하게 쌓아올려지기는 했지만, 마치 외장재를 붙이려다가 그만 공사가 중단된 것처럼 헐벗은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언뜻 보면 양식 면에서 베른에서 보았던 대성당과 유사하지만 불그스름한 특유의 색감 때문에 강렬한 인상을 준다. 깎아지를 듯한 첨탑은 최초 설계자의 의도대로 두 쌍의 대칭을 이루지 못한 채 하나만이 우뚝 솟아 올라 있는데, 우리 건축에서 처마 위에 얹는 어처구니처럼 각양각색의 패턴이 첨탑의 다급한 사면(斜面)을 따라 줄지어 있기 때문에 더욱 날카로운 인상을 준다. 베른 대성당이 궁중화가였던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면,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은 이단아였던 고야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베른을 구경할 당시 궂은 날씨 때문에 베른 대성당 앞을 지나치면서도 내부에 들어가볼 생각을 못했다.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 들어가는 것이 처음으로 유럽 성당의 내부를 구경하시는 것이었다. 과연 장대한 외관만큼이나 실내 또한 규모가 크고, 길다란 반원형 아치에 의해 지탱되는 높은 천장은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성당의 높이 또한 비현실적으로 높다. 우리는 성구실 앞을 지나쳐 시계방향으로 성당 내부를 한 바퀴 쭈욱 둘러보았는데, 부모님은 성당의 스케일에 내내 감탄하셨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쁘띠 프랑스나 유럽 의회 정도를 생각하고 있던 나도 대성당이 주었던 인상을 잊을 수 없다. 이스라엘에 있을 때 원없이 교회를 다니고, 스페인 여행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가보아서 규모 있는 교회 건물을 보는 게 처음은 아닌데도, 마치 성난 꽃게처럼 빨간 집게를 하나 뻗고 있는 듯한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풍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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