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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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V일상/book 2019. 9. 5. 00:03
작가가 신(神)과 같은 존재일 리 없지만, 또한 소설이라는 것 역시 인간의 손에서 나온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불멸(不滅)의 존재는 아니지만, 로베르토 볼라뇨라는 사람의 작품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악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겠다는 작가의 야심찬 구상은 물론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누구라도 악의 심연을 낱낱이 밝혀낼 수는 없다. 다만 악의 성질을 얼마나 가까이서 규명(糾明)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때문에 첫 번째 권부터 아르킴볼디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묘령의 작가를 등장시켜, 이 세상의 악(惡), 그리고 악의 우스꽝스러움, 악의 현시(現示), 악의 편재(偏在), 악의 순수성에 대해 종횡무진하며 글을 전개해 나가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발상은 정말이지 감탄스럽기까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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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스러운 탐정들일상/book 2016. 12. 28. 01:31
비평은 한동안 작품과 동행한다. 이어 비평은 사라지고 작품과 동행하는 이들은 독자이다. 그 여행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이윽고 독자들은 하나, 둘 죽고 작품만 홀로 간다. 물론 다른 비평과 다른 독자들이 점차 그 항해에 동참하게 되지만, 이윽고 비평이 다시 죽고 독자들이 다시 죽는다. 그리고 작품은 그 유해를 딛고 고독을 향해 여행을 계속한다. 작품에 다가가는 것, 작품의 항로를 따라가는 항해는 죽음의 확실한 신호이다. 하지만 다른 비평과 다른 독자들이 쉼 없이 집요하게 작품에 다가간다. 그리고 세월과 속도가 그들을 집어삼킨다. 마침내 작품은 광막한 공간을 어쩔 도리 없이 홀로 여행한다. 그리고 어느 날 작품도 죽는다. 태양과 대지가, 또 태양계와 은하계와 인간의 가장 내밀한 기억, 즉 만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