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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V/로베르토 볼라뇨/열린책들>
작가가 신(神)과 같은 존재일 리 없지만, 또한 소설이라는 것 역시 인간의 손에서 나온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불멸(不滅)의 존재는 아니지만, 로베르토 볼라뇨라는 사람의 작품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악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겠다는 작가의 야심찬 구상은 물론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누구라도 악의 심연을 낱낱이 밝혀낼 수는 없다. 다만 악의 성질을 얼마나 가까이서 규명(糾明)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때문에 첫 번째 권부터 아르킴볼디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묘령의 작가를 등장시켜, 이 세상의 악(惡), 그리고 악의 우스꽝스러움, 악의 현시(現示), 악의 편재(偏在), 악의 순수성에 대해 종횡무진하며 글을 전개해 나가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발상은 정말이지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의 공간적 무대가 멕시코 일대로 한정되어 그의 라틴아메리카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뚜렷이 드러났다면, <2666>이라는 거대한 장편소설―로베르토 볼라뇨는 처음에는 이 작품이 반드시 한 권으로 출간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어쨌든간 최종적으로 구성에 맞춰 총 다섯 권으로 분권이 되었다―은 주무대를 유럽으로 옮겨와 작가로서 보다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이끌어낸다. 이로써 작년과 마찬가지로 전집을 하나 완독해보자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사실은 하나 이상의 작품을 읽은 듯한 여운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고 읽기 쉽게 번역이 되었던 점도 무척 마음에 든다. 감사하게도 로베르토 볼라뇨가 비교적 다작(多作)한 작가이기에, 앞으로도 그의 소설들을 수시로 찾아 읽을 생각이다. 이로써 나의 어린 세계 또 하나가 무너져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학교를 오가는 길에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면서, 길은 수평으로 펼쳐지지 않았으며, 언덕으로 울퉁불퉁하게 펼쳐지지도, 지그재그로 펼쳐지지도 않았고, 수직선이라는 걸, 해저의 바닥으로 향하는 기나긴 하강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 그러니까 나무나 풀, 늪지나 동물이나 울타리들이 해저의 벌레나 갑각류로 변하는 곳이며, 지상의 삶이 중지되고 지상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삶으로 변하는 곳이고, 불가사리와 바다거미로 변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p. 1217
건강한 사람은 병든 사람과 접촉을 꺼린다. 이런 법칙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하다. 한스 라이터는 예외였다. 그는 건강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병든 사람들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결코 따분해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항상 남을 도우려고 했고, 너무나 모호하고 너무나 신축적이며 너무나 왜곡된 우정이라는 개념을 높이 평가했다. 어쨌거나 병든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흥미롭기 마련이다. 병자들의 말, 심지어 간신히 중얼거릴 수 있는 말조차도 건강한 사람들의 말보다 더 중요하다. 사실 모든 건강한 사람도 미래에는 아픈 사람이 된다. 시간이라는 개념, 아, 평자들의 시간 개념, 그것은 사막의 동굴에 숨겨 둔 보물과도 같다. 게다가 병자들은 진짜로 물어뜯는다. 반면에 건강한 사람들은 물어뜯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공기를 덥석 물려고 할 뿐이다. 그 밖에도, 그 밖에도, 그 밖에도.
— p. 1240
때때로 세 사람은 테라스나 어두운 카바레의 테이블에 앉아서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집요하게 침묵을 지키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갑자기 돌이 되어 시간을 잊고 완전히 정신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마치 일상생활의 심연과 사람들의 심연, 그리고 대화의 심연을 회피하고서, 호반 같은 지역, 즉 후기 낭만주의 지역을 엿보려고 결심한 사람들 같았다. 그곳은 여명에서 여명까지 시간의 경계가 희미한 곳이다.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시간처럼, 아이를 방금 낳고서 죽음을 선고받은 여자들, 즉 더 시간이 주어져도 그것이 더는 영원이 아님을 알면서도 온 마음으로 더 많은 시간을 소망하는 여자들의 시간처럼, 10분, 15분, 20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마치 커다란 사마귀나 심장 박동처럼, 너무나도 차분하게 두 호반 주변을 시시각각 가로지르면서 날아다니는 새들과 같다. 물론 그런 다음에 세 사람은 경련을 일으키듯 침묵에서 빠져나와 다시 독창적인 생각이나 여자들, 혹은 핀란드 철학이나 독일 제국을 횡단하는 고속도로 건설과 같은 것들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 p. 1245
호엔시는 문화란 영웅적 예술과 미신적 해석으로 구성된 연계 사슬이라고 말했다. 젊은 학자 포페스쿠는 문화란 상징이며, 그 상징은 구명 부표 같은 모습을 지녔다고 지적했다. 폰 춤페 여남작은 근본적으로 문화람 쾌감이라고, 쾌감을 제공하거나 부여하는 것이며, 나머지는 모두 허풍이며 아는 체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친위대 장교는 문화란 피의 부름이라고, 낮보다는 밤에 더 잘 들리는 부름이며, 또한 운명의 해독기라고 언급했다. 폰 베렌베르크 장군은 자기에게 문화란 바흐라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참모 장교 중 한 사람은 자기에게 문화란 바그너며 그것으로 모든 게 설명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참모 장교는 자기에게 문화란 괴테며, 자기 역시 장군님이 말한 것처럼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심지어 종종 충분한 것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삶은 단지 다른 사람의 삶과만 비교될 수 있으며, 한 사람의 목숨은 단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열심히 즐길 수 있을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엔트레스쿠 장군은 방금 전에 참모 장교가 주장한 것을 듣고 몹시 즐거워했다. 그는 자기가 보기에는 정반대로, 문화란 삶인데, 다 한 사람의 삶이나 단 한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일반적인 삶이라고, 즉, 일반적인 삶의 표현이며 심지어 가장 저속한 표현일 수도 있다고 했다.
— p. 1280~1281
그런 영웅은 자신도 모르게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악한이나 일반인, 혹은 마음씨가 고운 평범한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지혜의 등대, 몇 백만 사람에게 마법을 걸 수 있는 매력적인 등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인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은 채, 심지어 그런 걸 원하거나 열망하지도 않은 채 말입니다. 하기야 최악의 부류에 속하는 악한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은 삶을 살면서 어느 순간 사람들과 시간을 지배하고자 꿈을 꾸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언젠가는 자기 교회가 지구의 가장 외딴곳까지 퍼져 나가리라고 생각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우리가 세계관이라고 부르는 것을 지녔습니까? 겉으로 보기에 모든 것을 알던 예수 그리스도가 지구는 둥글고 서쪽에 아메리카의 원주민이 살며, 동쪽에는 중국인들이 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까? 그는 이 마지막 말을 하는 데 굉장히 힘이 든 듯 침을 튀기고 말았다. 그러고서 스스로 이런 질문에 대답했다. 아닙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모든 사람이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관점은 자신의 마을에 한정되고, 대지의 눈앞에 있는 확실하고 평범한 것에만 얽매입니다. 대단찮고 제한적이며 가족의 더러운 때로 가득한 그런 세계관은 살아남고, 시간이 흐르면서 권위와 설득력을 지니게 됩니다.
— p. 1284~1285
「이 나라는 말이네.」 노인은 아마도 그날 오후 아르킴볼디가 된 라이터에게 말했다. 「순수와 의지라는 이름으로 여러 나라를 심연의 구렁텅이로 던져 버리려고 했다오. 자네도 알겠지만, 난 순수함과 의지는 순전히 허튼소리라고 생각해. 내 말을 잘 듣도록 하게. 순수와 의지 덕분에 우리 모두는, 우리 각자는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겁쟁이와 흉악범이 되어 버렸어. 어쨌건 겁쟁이와 흉악범은 동일한 것이지만 말이네. 이제 우리는 울고 슬퍼하면서 이렇게 말하지. 우리는 몰랐어요! 우리는 깨닫지 못했단 말이에요! 나치들이 그런 거예요! 우리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소연하는지 안다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동정을 유발하는지 알지. 남들이 우리를 가엽게 여기고 용서해 준다면, 우리는 비웃음당하는 따위는 개의치 않지. 기억 상실이라는 기나긴 연휴를 시작할 시간은 충분히 있을 거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나, 젊은이?」
— p. 1469~1470
「이 타자기는 우리 아버지가 내게 선물한 걸세. 다정하고 교양 있는 우리 아버지는 아흔세 살까지 살았지. 본질적으로 착한 사람이었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는 진보를 믿는 사람이었네. 불쌍한 우리 아버지. 진보를 믿었고, 물론 인간의 본질은 선하다는 걸 믿었지. 나 역시 인간은 본질적으로 착하다고 믿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네. 살인자들도 마음은 착하지. 우리 독일인들은 그걸 아주 잘 안다네. 나는 살인자와 술을 마시면서 밤을 지새울 수 있고, 아마도 두 사람은 태양이 떠오르는 걸 지켜보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베토벤의 음악을 흥얼거릴 수도 있을 걸세. 그리고 살인자는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흐느낄 수도 있지. 자연스러운 거야. 살인자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자네와 난 그걸 아주 잘 아네. 전혀 쉬운 일이 아니야. 순수와 의지, 의지와 순수를 요구하는 일이거든. 수정처럼 맑은 순수함과 강철처럼 굳은 의지 말일세. 심지어 난 살인자의 어깨에 기대어 울기 시작하면서 <형제>나 <친구> 혹은 <불행을 함께하는 동지> 따위의 달콤한 말도 속삭일 수 있어. 그 순간 살인자는 착한 사람이야. 본질적으로 착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난 바보야. 본질적으로 바보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감상적이야. 그건 우리의 문화가 주체할 수 없이 감상적인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런 행위가 끝나고 내가 혼자 남으면, 살인자는 내 방 창문을 열고 간호사처럼 까치발로 들어와서 내 목을 잘라 피가 한 방울도 남지 않게 할 수도 있어.」
— p. 1470~1471
「문학은 광활한 숲이고 걸작은 호수나 아주 큰 나무, 혹은 이상하기 그지없는 나무야. 또는 아주 사랑스럽고 생생한 꽃이거나 숨겨진 동굴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숲 역시 평범한 나무와 풀, 웅덩이와 기생 식물들, 버섯과 자그마한 야생화들로 이루어지지. 난 잘못 생각했어. 사실상 이류 작품이란 존재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이류 작품의 저자는 개똥이나 말똥이로 불리지 않는다는 거야. 개똥이나 말똥이는 존재해. 이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들은 고생하고 애써 일하며 잡지와 신문에 글을 싣지. 가끔씩은 심지어 인쇄된 종이가 아깝지 않은 책을 출판하기도 해. 그러나 자네가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그런 책들이나 그런 글들은 <그들이 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걸세.」
— p. 1471~1472
「걸작이 아닌 모든 작품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폭넓은 위장의 일부야. 자네는 군인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걸세. 걸작이 아닌 모든 작품은 대포의 밥, 그러니까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보병이며, 희생되어야 하는 부분일세. 그것은 다양한 방법으로 걸작의 밑그림을 흉내 내기 때문이야. 이런 사실을 깨달은 뒤 나는 글쓰기를 그만두었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어. 사실대로 말하면, 글을 멈추자 내 마음은 더욱 잘 움직였어. 난 나 자신에게 물었다네. 왜 걸작이란 숨겨져야 하는 걸까? 어떤 이상한 힘이 걸작을 비밀과 미스터리를 향해 이끄는 것일까?
나는 이미 글쓰기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아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며, 걸작을 쓸 준비가 되었을 경우에만 가치가 있지. 작가들 대부분은 착각하거나 놀이를 하는 것이지. 아마 착각하는 것과 놀이하는 건 동일한 걸지도 몰라. 그건 동전의 양면일 수도 있거든. 사실 우리는 결코 어린아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종기와 부풀어 오른 혈관, 종양과 검버섯으로 뒤덮인 끔찍한 아이지만 그래도 아이거든. 다시 말하면, 결코 삶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건 우리가 삶이기 때문이야. 또한 우리는 연극이다, 혹은 우리는 음악이다 하고 말할 수도 있어. 마찬가지로 작가들 중에서 글쓰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불멸이라고 믿는 놀이를 하지. 그러면서 우리의 작품은 너무 관대하게 평가하고 남의 작품들은 항상 잘못 평가하면서, 스스로 착각에 빠져. 작가들은 노벨상 시상식장에서 만나 하고 말하지. 그건 마치 지옥에서 만나 하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네.
놀이와 착각은 이류 작가들의 눈가리개이자 충동이야. 또한 미래에 행복할 것이라는 약속이기도 하지. 그것은 현기증 날 정도의 속도로 커져 가는 숲이야. 그들 모두는 숲이 무성해져서 숨겨야 할 것들을 숨기도록 거들지. 그들 모두는 숲이 번식시켜야 할 것을 번식시키도록 도와. 그런 과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누구도 숲이 무엇을 번식시키는지, 숲이 무엇을 희미하게 비추는지 밝히지 못해.」
— p. 1473~1475
「시간이 별로 없어요. 난 시체들을 올리고 내려야 해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난 숨을 쉬어야 하고 먹어야 하며 마셔야 하고 잠을 자야 해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난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움직여야 해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난 정신없이 살아야 해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지금 죽어가요. 자네도 짐작하겠지만, 나는 더는 질문을 하지 않았어. 나는 냉동 칸을 열도록 도와주었네. 그가 시체를 안에 넣는 것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런 일에는 너무나 서툴렀고, 결국 시체를 덮은 시트가 흘러내렸네. 나는 시체의 얼굴을 보았고, 눈을 감고서 고개를 숙이고는 그가 편안하게 일하도록 놔두었지.
그곳에서 나왔을 때, 내 친구는 시체 보관소의 문가에서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어. 아무 일 없었지? 그는 내게 물었다네. 난 대답할 수 없었지. 아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어. 아마도 괜찮은 건 하나도 없어 하고 대답한 것 같네. 그러내 내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그게 아니었어.」
— p. 1481
혼자 있게 된 그는 맞으면 어떻고 틀리면 어때, 어차피 숫자이긴 마찬가지인데 하고 생각했다. 숫자는 항상 어림수야. 올바른 숫자란 존재하지 않아. 단지 나치들과 기초 수학 선생님들만 올바른 숫자를 믿어. 단지 당파심이 강한 사람들과 피라미드를 세운 미친 작자들, 세리들, 숫자 점으로 사람의 운명을 거의 공짜로 읽어주던 사람들만이 올바른 숫자를 믿었어. 반대로 과학자들은 모든 숫자는 어림짐작이라는 것을 알았어. 위대한 물리학자들과 위대한 수학자들, 위대한 화학자들과 편집인들은 우리가 항상 어둠 속에서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았어.
— p.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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