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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일상/book 2019. 7. 17. 21:28
<무서운 아이들(앙팡 떼리블)/장 콕토/창비>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처럼 서가(書架) 사이를 유유자적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책. 아마 이 책이 아니었다면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찾아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이 두 작가의 작품은 어쩐 일인지 번역이 다양하지 않은 듯하다) 장 콕토가 에디트 피아프의 절친한 친구였듯, 이 짧지만 강렬한 글은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그린 <라 비앙 로즈>의 비장한 느낌을 담고 있기도 했고, 히치콕 트뤼포의 <새>처럼 예측할 수 없는 '심술'을 가득 담고 있기도 했고, 또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만큼 돌발적인 방식으로 유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의 욕망을 담고 있기도 했다. 제라르와 폴 사이에서 내 유년시절 깊이 가라앉아 있던 우울감, 경쟁심, 고집, 야비함에 대해 되짚어 볼 수 있었던 작품.
그러나 5학년 아이들의 경우에는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하는 그 힘이 아직은 유년의 불가해한 충동들을 이기지 못한다. 동물적이면서도 식물적인 충동들, 우리의 뇌리에는 그것들이 몇몇 고통에 대한 기억 이상으로 남아 있지 않고 또 어른들이 다가가면 아이들은 입을 다물어버리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드러남의 현장을 목격하기가 어려운 충동들.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시침 떼며 딴청을 부린다. 그 뛰어난 배우들은 대뜸 짐슴처럼 털을 곤두세우거나 화초처럼 공손하고 상냥한 태도를 꾸밀 줄 알아서, 자기네들의 은밀한 종교의식을 절대로 노출시키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 의식에 속임수, 희생, 약식재판, 공포, 형벌, 인신 공여가 필요하다는 것뿐이다. 세부 사항들은 베일에 묻혀 있고, 그 종교의식의 신자들에게는 어쩌다가 몰래 엿듣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 어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자기들만의 고유어법이 있다.
―p.11
그들은 떠나지 못했다. 그들은 꿈의 씨실을 따라가다가 주의가 흐트러지고 산만해진다고 느꼈다. 사실 그들은 다른 곳으로 떠났던 거이다. 스스로를 자기 밖으로 내던지는 일에 이력이 나 있었던 그들은 스스로를 자기 자신 속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그 새로운 단계를 부주의 또는 방심이라고 불렀다.
―p.93
그리고 아이들이 저택의 온갖 곳으로 방을 찾아다니면서도 그 회랑식 방만은 예외로 여겼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두 개의 방 사이에서 아이들은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처럼 방황했다.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들은 이제 더 이상 첫닭이 울면 달아나는 그 가벼운 유령이 아니라, 허공을 감도는 불안한 유령이었다. 마침내 각자의 방을 갖게 되자 완강하게 자기 방을 지키려고 하면서, 아이들은 미친 듯이 자기 방에 처박혀 지내거나, 아니면 적대적인 태도로, 두 눈에 칼날을 번득이면서, 입술을 앙다문 채, 어슬렁어슬렁 이 방 저 방을 오갔다.
―p.113
그는 혼자 열광했다. 불현듯 그는 거울에서 부드러워진 자기 얼굴을 보았고, 어리석음이 자신에게 만들어주었던 찌푸린 얼굴이 부끄러워졌다. 그는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자신의 악은 선이 되어 있었다. 그는 최대한 빨리 그 선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가 그럴 수 있을까? 그는 사랑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이 상호적인 것은 아니었고, 결코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p.119
어쩐지 자코메티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장 콕토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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