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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볼라뇨의 글에 빠져들기까지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그의 필체는 대담하고 다양한 테마를 종횡무진하기 때문이다. 좀 더 <야만스러운 탐정들>의 컨셉이 느껴지는 두 번째 글은 아말피타노라는 철학자의 사적인 이야기와 칠레 정치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한편 이런 발상 혹은 이런 느낌, 또는 이런 종작없는 생각들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측면을 지녔다. 그것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기 자신의 기억으로 만들어 주었다. 길고 오래가면서 결국은 승리하는 고통을 인간적이고 짧은 시간 동안만 지속되며 항상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개인의 기억으로 만들었다. 그것들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종잡을 수 없는 아우성을, 그러니까 부정과 학대로 점철된 이야기를 항상 자살할 가능성이 있는 산뜻하게 구성된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비록 자유가 영원하고 계속된 도피에만 소용이 있을지라도, 그런 도피를 자유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제정신으로 알려진 것을 희생시키더라도, 혼란을 질서로 만들어 주었다.
―p.355
아말피타노는 고개를 돌려 길거리의 타코 가게를 쳐다보았다. 거기서는 2인 1조를 이룬 경찰들이 허리에 권총을 찬 채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말을 나누며 새빨간 고추가 끓고 있는 가마솥 같은 검붉은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 가마솥의 마지막 거품이 서쪽에서 사라지려는 참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햇빛은 한 줄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빨랫줄에 걸린 디에스테의 책은 산타테레사 근교나 그 안에서 본 어떤 것보다도 밝고 흔들리지 않으며 사리에 맞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아말피타노는 생각했다. 그가 본 것은 기댈 곳 없는 이미지, 이 세상 모든 고아의 몸 안에 담긴 이미지, 파편들, 파편들이었다.
―p.386
그러자 아말피타노는 그럼 그 이외의 모든 건 우리를 배신한다는 건가요? 하고 물었다. 목소리는 그래, 실제로 그렇지, 인정하기 힘들지만, 그러니까 너에게 인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힘들지만, 그게 바로 변치 않는 진리야 하고 말했다. 윤리가 우리를 배신하나요? 의무감이 우리를 배신하나요? 정직이 우리를 배신하나요? 호기심이 우리를 배신하나요? 사랑이 우리를 배신하나요? 용기가 우리를 배신하나요? 예술이 우리를 배신하나요? 그래. 목소리가 말했다. 모든 게, 정말로 모든 게 우리를 배신하거나, 아니면 바로 너를 배신하지. 그건 다른 거지만, 이 경우에는 마찬가지야. 차분함만이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아. 그러나 그건 어떤 것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말해 주어야만 할 것 같아. 아니에요. 아말피타노는 말했다. 용기는 우리를 절대 배신하지 않아요. 자식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예요. 배신하지 않는다고? 목소리가 말했다. 그래요. 아말피타노는 말하면서 갑자기 자기가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p.390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보고자 하는 건 결코 현실에 상응하는 법이 없지요. 사람들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비겁해요. 교수님에게만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말해 인간들은 모든 생명체 중에서 쥐새끼와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에요.
―p.411
그는 『소송』 대신 『변신』을, 『모비딕』 대신 『필경사 바틀비』를, 『부바르와 페퀴셰』 대신 『순박한 마음』을, 『두 도시 이야기』나 『피크위크 페이퍼스』 대신 『크리스마스 캐럴』을 골랐다. 너무나 슬픈 역설이야. 아말피타노는 생각했다. 이제는 심지어 책을 좋아하는 약사조차도 위대하고 불완전하며 압도적인 작품들, 즉 미지의 세계 속에서 길을 열어 주는 작품들을 읽기 두려워해. 사람들은 위대한 스승들의 완벽한 연습작품만 골라서 읽고 있어. 마찬가지 이야기지만, 그들은 위대한 스승들이 연습 경기하는 걸 보고 싶어 해. 하지만 위대한 스승들이 무언가와 맞서 싸울 때, 그러니까 피를 흘리며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악취를 풍기면서 우리 모두를 위협하고 두려움으로 사로잡는 것과 맞서 싸울 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p.426~427
헤이리 마을 카페 가는 길
꼭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