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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로베르토 볼라뇨/열린책들>
로베르토 볼라뇨 전집 장만+_+Good LUCK~
어느 날 나는 관리자 중 한 사람과 만났지요. 난 그런 바보 같은 머그잔을 만드는 게 지겹다고 말했어요. 그 관리자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이름이 앤디였지요. 항상 노동자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던 사람이었지요. 그는 내게 우리가 전에 만들던 머그잔을 만들고 싶냐고 물었어요. 난 바로 그거라고 대답했지요. 진심으로 말하는 거예요, 딕? 그는 물었어요. 난 정말로 진지하게 말하는 거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새로운 머그잔 때문에 더 일을 많이 해야 하나요? 관리자는 물었어요.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일은 동일하다고, 그러나 전에는 머그잔들이 내게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지금의 컬러 머그잔들은 내게 상처를 준다고 말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앤디가 다시 물었어요. 내가 한 말 그대로라고, 그러니까 전에는 그 빌어먹을 머그잔들이 날 힘들게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 마음을 모두 갉아먹는다고 대답했지요. 그런데 지금의 머그잔들이 더 현대적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요? 앤디가 물었어요. 나는 바로 그거라고 대답했어요. 전에는 머그잔들이 그다지 현대적이지 않았고, 심지어 그것들이 내게 상처를 주려고 했을지라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대답했어요. 머그잔들이 나를 찌른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빌어먹을 머그잔들이 무장한 사무라이들의 지랄 같은 칼처럼 보인다고, 그래서 나를 미치게 만든다고 덧붙였어요. 어쨌건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어요. 관리자는 내가 하는 말을 차분하게 들었지만, 한마디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다음 날 나는 임금을 정산해 달라고 요청하고서 공장을 떠났지요. 그리고 다시는 일하지 않았어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p.100~101
하지만 정말로 두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는 감지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그곳에서 아르킴볼디에 관해 말한 모든 것, 그리고 타인의 시선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 즉 지혜 부족으로 식인종에게 희생될 사람들의 걸음걸이에 대한 절대적 권태감이었다. 두 사람은 <항상> 굶주리고 탐욕스럽고 열정적인 식인종, 다시 말하면 30대 후반에 성공했다고 우쭐대는 얼굴이었다. 그들은 따분함에서 광기로 옮겨 가는 자신들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 표정이 더듬거리는 핵심적인 말은 오로지 세 단어, 그러니까 <날 사랑해 줘>였다. 아니면 세 단어와 한 문장으로 구성된 <날 사랑해 줘. 내가 널 사랑하게 해줘>였지만,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142~143
「그건 그렇고, 우연을 믿거나 혹은 믿지 않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 모두는 하나의 우연입니다. 내 친구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말해 주더군요. 내 친구는 기차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우연이 아니라고, 심지어 기차가 여행자가 모르는 지역, 그러니까 여행자가 평생 다시는 볼 수 없을 지역을 지나가더라도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출근하려고 잠에 취한 채 아침 6시에 일어나느 사람에게도 세상은 우연은 아니랍니다. 이미 축적되어 온 고통에 또 다른 고통을 덧붙이는 사람에게도 그렇습니다. 고통은 쌓이는 법이고, 그것은 현실이야, 고통이 커질수록 우연의 가능성은 더욱 적어지는 거지,라고 내 친구는 말했습니다.」
「우연은 사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운명의 또 다른 얼굴이자 그 이외의 또 다른 무엇입니다. ··· 너무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기에 내 친구도 그걸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그를 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내 친구는 인간다움을 믿었고, 그래서 질서, 즉 그림의 질서와 말의 질서를 믿었습니다. 그는 그런 질서가 바로 그림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구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심지어 진보도 믿었을 겁니다. 그런데 우연이라 자신의 본질에 얽매인 우리에게는 완전한 자유처럼 보입니다. 우연이란 법칙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법칙을 따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것을 모릅니다. 이런 비유를 사용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우연이란 시시각각 지구상의 모든 곳에 모습을 보이는 하느님과 같습니다. 어리석은 피조물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몸짓을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입니다. 그 허리케인에서, 즉 뼛속의 파열에서 성찬식이 이루어집니다. 우연과 그 흔적의 성찬식, 즉 우리와 그 흔적의 성찬식입니다.」
—p.177~175
아말피아노가 말했다. 「멕시코 지식인과 권력의 관계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이건 모든 지식인이 그랬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주 훌륭한 예외도 있으니까요. 또한 권력에 굴복하는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서 그렇게 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권력에 완전히 복종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조차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그건 그저 일자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건 국가를 위해 하는 자리입니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출판사나 신문사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아내들이 먹여 살립니다. 혹은 부모들이 부유해서 그들에게 매달 용돈을 줍니다. 그것도 아니면 노동자이거나 범죄자들이지만, 나름대로 일하면서 정직하게 삽니다. 멕시코에서 지식인들은 국가를 위해 일합니다. 이것은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라틴 아메리카의 모든 국가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제도혁명당 아래서도 그랬고, 국민행동당 아래서도 마찬가집니다. 한편 지식인은 국가의 열렬한 수호자일 수도 있고, 국가의 매서운 비판자일 수도 있습니다. 국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국가는 그를 부양하며 조용히 지켜봅니다. 본질적으로 무용지물인 이런 작가 무리를 대규모로 거느리면서 국가는 그들을 이용합니다. 어떻게 이용하느냐고요? 악마를 쫓아내고 민족 정서를 바꾸거나 적어도 동요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아무도 확실하게 모르는 구멍에 석회를 바르지요.」
—p.233~234
「그는 장님의 눈을 가졌어요. 그가 장님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장님의 눈과 똑같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어요.」
—p.246
그녀의 침묵은 그다지 불쾌하지도 않았고, 슬픔이나 원한 같은 것을 암시하지도 않았다. 불투명하고 진한 침묵이 아니라 투명한 침묵이었다. 거의 아무런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 침묵이야. 이런 침묵이라면 어떤 사람이든 얼마든지 익숙해질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어. 에스피노사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이런 침묵에 익숙해질 수 없을 터였고, 그 역시 그걸 잘 알았다.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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