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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코뿔소의 비밀일상/book 2019. 4. 29. 17:52
<황금 코뿔소의 비밀/프랑수아자비에 포벨/눌민>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닌 다른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지만, 잘 알려진 역사보다 덜 알려진 역사를 읽는 일은 더욱 흥미롭다. 그래봐야 잘 알려진 역사라고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프리카의 중세사’를 다룬다는 이 책을 접했을 때 반드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의 역사에는 아마도 프랑스대혁명이나 명예혁명, 독립전쟁만큼 극적이거나 주변국으로 파급력이 컸던 역사적 이벤트는 적을지 모른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프리카는 아직 들려줄 이야기가 많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아프리카의 중세사에 대해 알려주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문자화된 문명의 흔적이 적을 뿐만 아니라 강력하게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한 국가도 일시적으로 존속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매우 척박한 자연환경(사하라 사막처럼)이나 또는 정반대로 고온다습한 기후(열대우림처럼)는 아프리카에서 꽃피웠던 문명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리고는 했다. 이러한 연유로 아프리카 중세사의 윤곽을 흐릿하게나마 그려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가정과 추론에 의지해야 한다.
보통 아프리카의 문명 또는 역사라고 하면 고대 이집트 문명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이 책에서는 소말리아를 비롯해 가나, 짐바브웨 등 넓은 권역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이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는 7세기에 발흥한 신흥종교 이슬람이 아프리카 대륙에 침투해가는 과정과 종교를 통해 정통성을 획득한 왕조들이 흥망성쇠하는 하는 종교적 지형의 변화가 가장 재미있었다. 특히 세 가지 정도의 역사적 사건이 기억에 남는데, 첫째, 오늘날 모로코 지역에 기반을 마련한 알모라비드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한 사건, 둘째, 이베리아 반도에서 일어난 레콩키스타 운동의 결과 유럽과 지리적으로 한참 동떨어진 발레아레스 제도가 카탈루냐 왕조의 휘하에 들어가는 사건, 셋째, 오늘날 에티오피아 지역에 터를 잡았던 기독교도 국가(누비아 왕국)가 정통성을 종교적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 국가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콥트교회의 총주교)를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점 등이다. 아직도 좀 막연하기는 하지만 생경하기만 한 시간과 공간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좋았다.
흥미로운 자료는 결국 국경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의 총합이다. 이 국경은 자연 조건 자체가 정복의 야욕을 차단할 정도로 확실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통과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 무엇이 한쪽으로는 통과되고, 다른 한쪽으로 통과되지 않는지에 대한 권리 조항이 정치적으로 확정되어 있다. 이집트인에게는 누비아에서 자유롭게 정착할 수 있는 권리가 허락되었지만, 상호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동골라 모스크에 대해서는 관리 의무가 있었지만, 이집트 내 그리스도교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바크트는 이상하다. 무슬림이 원하는 국경은 모순이다. 누비아인에게는 닫혀 있고, 이집트인에게는 열려 있다.
p. 47
보물 주화는 역사가의 관점에서 역설적인 관심거리다. 대개 이런 주화는 경제 중심지가 아니라 외곽에서 출토되기 때문이다(로마 시대 주화는 이탈리아보다는 영국, 불가리아 혹은 인도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또한 대단히 비상식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물품 유통의 팽창보다는 축적이나 통화 수축을 증명한다. 주화가 어떤 시대에 대해 알려주는 사건은 경제 활동이 아니라 경제 침체 혹은 중단이다.
p. 120~121
어느 곳인지 모르면서 어떻게 만나는가, 언어가 같지 않으면서 어떻게 소통하는가? 이는 모두 북소리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시장에서 공급과 수요는 어떻게 맞추는가? 무게나 규격 단위가 같지 않고 돈을 사용하지 않는데, 어떻게 서로를 만족시키는 수준으로 거래를 조절하는가? 이는 상대가 만족하는 수준까지 양을 올림으로써 가능하다. 이슬람법과 같은 공동의 법도 없이, 통제되지도 않는 거래를 어떻게 보장하는가? 옷을 벗어 놓는 것으로 가능하다. 여러 차례 전해졌지만,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을 ‘무언의 물물교환’은 당시 사람들이 가졌을 의문에 모두 답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는 황금을 ‘수확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처럼 중세 사헬 시장에서 금 거래가 이루어지는 물리적이고 구체적 상황을 다소 의아스럽게 묘사해 주고 있지만, 이러한 방식의 도입은 북부 상인들 사이에 생기게 될 금 거래의 분규와 우려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p. 151
마르코 폴로의 서술은 서로 다른 두 지역, 아프리카 남동부 바다에 있는 큰 섬 마다가스카르와 예전에는 무역항이었다가 현재 소말리아의 수도가 된 모가디슈, 이 두 지역에 대한 정보를 섞은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뒤섞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실제 각기 관련된 정보가 물과 기름처럼 쉽게 분리된다. 지리적 사항들은 마다가스카르의 것이고, 무역에 관한 사항은 모가디슈의 것이다. 아랍 항해자들에게 모가디슈는 첫 항해 구간이고, 잔즈와 소팔라 지방의 첫 북쪽 관문이다. 13세기 이미 아랍어를 흡수한 반투어로 현대에 케냐와 탄자니아의 교통어가 된 스와힐리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외국인 장사꾼들과 교육이 형성된 것은 아마 10세기 이전이었겠지만, 지역 지배층들이 무역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륙과 대양을 잇는 역할을 시작한 것은 분명 이 시기부터였을 것이다.
p. 183
그러나 왕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그를 볼 수 있는 다른 공식적 의례들이 있다. 매주 금요일이면 모스크에 가서 신도들과 기도를 올린다. 무슬림이든 아니든, 높은 신분이든 낮은 신분이든, 만족하든 바라는 바가 있든, 모두가 왕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볼 다른 많은 기회가 있다. 그러나 접견 시간에만 왕권을 행사하는 인물이 일반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날은 시각적 소통뿐 아니라 언어 소통에서도 균형이 맞지 않는다. 비천하고 신중하고 우의적인 말에 권위의 언어가 대답한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개인과 왕국의 중요한 사람 모두에게 뚜렷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대화가 아니다. 결정을 내리는 회의는 더욱 아니다. 특이한 언어 소통 구조다.
p. 247
포르투갈 사람들이 ‘남쪽에서 거슬러 올라와서’ 나타난 것에 놀라지 않았다. 그 기슭에 있는 그 누구도 동쪽 끝에 있는 일본만큼이나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작은 그리스도교 왕국 포르투갈이 어떤 곳인지 알려고 하는 궁리나 속셈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왕국에서 자신들의 세계를 공격하려고 소형 선단을 보낸다든가, 그 목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돌았다든가, 아프리카 대륙이 우회할 수 있는 대륙이라든가, 그것들도 알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온 사람들이 자신들을 포르투갈 사람이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향신료, 금, 인도 땅으로 물길을 알려줄 안내인, 그리고 혹시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찾아 북쪽으로 아프리카 해안을 올라가려 했다.
p. 287~288